윤희는 신청서 칸을 세 번 지웠다가, 결국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사진이라도 보고 싶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퇴근한 사무실, 다들 돌아간 뒤였다. 형광등 하나만 켜둔 채,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북에서 나고 자랐다. 오빠가 조선인 학교를 운영하다 옥살이를 한 뒤, 남동생들은 남쪽으로 떠났다. 1980년대에야 남쪽 지인을 통해 겨우 소식이 닿았다. 1992년을 마지막으로 그마저 끊겼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6년을 더 살고 눈을 감았다. 그해, 윤희는 아홉 살이었다.
윤희에게 남은 건 손바닥만 한 공책 한 권이다. 할머니는 동생들이 떠난 날마다 거기 한 줄씩 적었다. 이름도 안부도 아니었다. 2014년 겨울, 윤희는 그 공책을 배에 두르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얼음이 발밑에서 낮게 울었다. 공책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 할머니가 평생 가보지 못한 쪽으로, 손녀가 대신 건넜다.
촬영 날, 윤희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너무 무거우면 편집에서 빠질 것이다. 웃어야 한다. 렌즈 앞에서 웃었다. 뒤에서 큐카드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방송 날 밤 열 시였다. 윤희는 원룸에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껐다. 창밖은 조용했다. 공책을 펼쳤다. 할머니의 마지막 줄 다음에, 새 줄을 하나 그었다. 오늘 날짜를 적었다.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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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9년 차 탈북민 “한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 찾고 싶다” — 뉴시스, 2026년 9월 28일
한 줄 요약: 1992년에 끊긴 소식을 붙들고, 탈북 9년 차 의뢰인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남동생들과 그 후손을 찾아 방송에 사연을 보냈다.
작가의 말
기사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윤희라는 이름을 비롯해 이야기 속 장면과 세부는 모두 제 상상입니다. 1992년에 끊긴 소식과 6년 뒤의 죽음, 그 사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을 습관을 생각하다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