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옥은 계약서에 인주 없이 이름을 써넣은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흔둘. 청천면에서 나고 자라 다른 곳에 살아본 적이 없다. 남동생이 책보를 메고 학교 가던 아침이면 정옥은 밭으로 나갔다. 딸은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날부터 정옥은 숫자와 색으로 셈했다. 약봉지는 봉투 색깔로 구분하고, 버스는 앞자리 숫자만 봤다. 도장은 이가 나간 쪽을 손끝으로 더듬어 짚었다. 그래야 거꾸로 찍는 일이 없었다.
몇 해 전 여름, 손주가 받아쓰기 공책을 내밀며 봐 달라 했다. 정옥은 배가 아프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주는 다시 묻지 않았고, 정옥도 다시 부르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민 건 장연면 박말자였다. 열 살 아래였지만 언니 노릇을 했다. 화요일마다 둘은 두레학교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자음을 그었다. ㄱ이 낫 같다고 정옥이 웃으면, 말자는 그 낫으로 벤 세월이 이렇게 쓰이는 거라고 받았다.
시험지 맨 위, 이름 쓰는 칸에서 손이 떨렸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합격 통보는 전화로 왔다. 선생님 목소리가 문자보다 먼저 왔다. 정옥은 마루 끝에 앉아 그 말을 세 번 되물었다.
다음 날 그는 오래 묵혀둔 서류함을 꺼냈다. 도장 없이도 되는 종이 위에, 또박또박 석 자를 눌러 적었다. 이가 나간 도장은 서랍 안쪽으로 밀어 넣었을 뿐, 버리지는 못했다.
그날 저녁, 정옥은 손주에게 전화를 걸어 받아쓰기 좀 더 남았느냐고 물었다. 손주는 웃으며 이제 중학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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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배움엔 늦음이 없다”… 괴산두레학교 만학도 2명, 초등 검정고시 나란히 합격 — 경기뉴스원, 2026-09-11
한 줄 요약: 충북 괴산의 성인문해 배움터 ‘괴산두레학교’에서 칠순 안팎의 두 어르신이 초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했다.
작가의 말
기사에는 “가슴이 벅차다”는 한 문장이 전부였다. 나는 그 벅참보다, 그 벅참과 함께 도착한 것이 무엇일지가 궁금했다. 평생 도장으로 살아온 손이 처음 이름을 쓰게 됐다는 건 배움을 얻는 일인 동시에, 그동안 놓쳤던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손주라는 인물을 하나 세워, 늦게 도착한 배움이 정확히 무엇을 되돌릴 수 있고 무엇을 되돌릴 수 없는지를 함께 담아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