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자

그는 수험표에서 이름보다 수험번호를 먼저 확인했다. 지난해와 다른 숫자였지만, 앉는 자세는 그대로였다.

9월 2일 오전 8시 40분, 전국 2162개 고사장에서 국어 시험지가 일제히 뒷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오늘은 전공수업 대신 이 책상에 앉았다.

기숙사 룸메이트에게는 “본가에 일이 있어서”라고 했다. 반수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동기들 앞에서 이 시험지를 펼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필통 속 샤프는 고3 때 쓰던 것 그대로였다. 심만 여러 번 갈아 끼웠다. 왜 안 버렸는지는 그도 몰랐다.

옆자리 아이는 아직 교복을 입은 열여덟이었다. 시험지를 받고 다리를 떨었다. 그 다리를 보다가, 그는 자신의 다리가 더는 떨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긴장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익숙해진 것뿐이었다. 그게 더 서늘했다.

이번 9월 모의평가엔 그 같은 사람이 11만 명을 넘었다. 전체의 22.4퍼센트, 역대 최고치. 뉴스는 이 시험을 ‘수능 가늠자’라고 불렀다. 정작 무엇을 가늠하는 자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수학 답안지를 걷어가는 손이 지나갈 때, 그는 내년에도 이 자리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 합격을 향한 준비가 아니라,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준비였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 그는 결석계 사유란에 “개인 사정”이라고 적었다. 반수, 라는 두 글자는 이번에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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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확 바뀌는 수능 막차타는 N수생 11만명 ‘역대 최다’…9월 2일 모의평가 실시 — 헤럴드경제, 2026-09-02

한 줄 요약: 2027학년도 수능 9월 모의평가에 역대 최다인 11만 1925명의 N수생이 응시해, 전체 응시자의 22.4%를 차지했다.


작가의 말

뉴스는 이 시험을 ‘역대 최다’라는 숫자로 요약했다. 나는 그 숫자 뒤에 있는 한 사람을 상상했다 — 대학에 이미 적을 두고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 사람,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 떨리지 않는 다리가 안심이 아니라 서늘함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쓰며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