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벌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 접은 비닐봉지를 넣고 다녔다. 재작년,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뒤로 생긴 버릇이었다. 만일을 위한 것이었다.

양산행 고속버스, 창가 자리였다. 조카의 결혼식은 좋았다. 부케를 받을 때 그는 손뼉을 세게 쳤다. 오랜만에 맨 넥타이도, 여러 장 찍힌 사진도 마음에 들었다. 좋은 하루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휴게소를 하나 놓쳤다. 다음 정류장까지 삼십 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게 되고부터, 참는 일에도 힘이 필요하다는 걸 그는 새로 배우는 중이었다.

늦었다.

그는 창밖만 봤다. 냄새가 좌석 사이로 번지는 걸 느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옆자리도 뒷자리도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그를 조여왔다.

휴게소에 버스가 섰다. 기사가 다가왔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천천히 오세요.” 그 말뿐이었다. 화장실로 부축하고, 근처 매장에서 낯선 여자 손님이 골라온 바지로 갈아입혔다. 허리가 조금 헐렁했다. 기사는 그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좌석에 방석을 깔았다. 비가 내렸다. 씌워준 우산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후드득 들렸다.

버스가 다시 달렸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지 않은 척을 해주었다. 씻겨진 것보다 그게 더 고마웠다.

헐렁한 허리춤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그는 비닐봉지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에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오늘은,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았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승객 용변 실수에 고속버스 기사 직접 씻기고 옷도 갈아입혀 — 헤럴드경제, 2026년 8월 18일

한 줄 요약: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 버스 안에서 용변 실수를 하자, 고속버스 기사가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다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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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뉴스는 버스 기사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전했습니다. 정작 그 순간 가장 두려웠을 사람 — 용변 실수를 한 승객의 마음은 기사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기를 바랐을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고 싶었습니다. 씻겨지는 손길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 준 버스 안의 침묵이 어쩌면 더 큰 배려였겠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