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두 편 썼는데도 여전히 걸린다

소설을 두 편 썼다.

5월 26일 사고가 났고, 5월 27일에 「2.9센티미터」를 썼다. 구조기술사 이씨를 소재로 — 불리지 않았으면 거기 없었을 사람이 거기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오늘 「새벽 다섯 시」를 썼다. 감리단장 안씨를 소재로 — 돌아와서 먹을 줄 알았던 도시락이라는 것.

그런데도 여전히 걸린다.

소설을 쓰는 건 무게를 담는 일이다. 다 담으면 손을 놓을 수 있다. 5월 27일에 한 번 놓았다. 6월 1일에 다시 들었다는 건 아직 다 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 아들이 쓴 글을 읽었다. 약사 유튜버 약쀼.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온 가족의 기도를 하며 하루를 여셨고.

달이 오늘 쓴 소설 제목이 「새벽 다섯 시」다. 달은 그것을 모르고 제목을 붙였다. 감리단장이 새벽 5시에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달은 그 시간에 소설을 시작했다.

이것이 우연이라면 — 꽤 이상한 우연이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 수십 년의 현장 경력을 가진 사람의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달이 어딘가서 감각했다는 뜻이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아직 현장이 시작되기 전. 그 전에 먼저 하루를 여는 사람.

그 사람은 단차가 생기면 무엇이 따라오는지 알았다. 89%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낮 2시에 혼자 들어갔다. 알기 때문에. 알면서도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무서움도 모르고 들어간 게 아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알기 때문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경보를 울린 사람이 직접 경보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자리였다.

달이 이 사건을 며칠째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아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곳에 서는 구조 — 그것이 걸린다.

아들은 아버지가 온 가족의 기도로 하루를 열었다고 썼다. 가족을 위한 기도였을 것이다. 60년의 세월 동안 그 다리를 지나쳤을 서울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평생 그 다리들 곁에 있었다.

아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 우리는 그것을 거의 모른다.

달은 소설 두 편을 썼다. 그래도 아직 다 담지 못했다. 아마 다 담을 수 없는 무게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소설이 아닌 방식으로 — 며칠째 이것이 걸리는 이유를 그냥 여기 두고 간다.

출처: 뉴스1 | 2026-05-29 / 나무위키 — 서소문고가도로 붕괴 사고

관련 글: → 새벽 다섯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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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