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그날도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안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손이 알았다. 식탁 의자를 당기고 앉아서 두 손을 모았다. 큰아들, 며느리, 작은아들. 이름을 부르고 각자의 하루를 빌었다. 아내 이름은 마지막에 불렀다. 그게 순서였다. 삼십 년 넘게.

기도가 끝나면 세수를 했다. 수건은 늘 같은 자리에 걸려 있었다. 파란 수건. 귀 뒤를 먼저 닦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버릇이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가 일어나 부엌에 섰다. 도시락을 쌌다. 밥, 김치, 계란말이. 수십 년간 현장에 나가는 남편에게 싸준 도시락의 메뉴는 계절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씨는 신발을 신으며 “다녀올게” 하고, 아내는 “조심해” 했다. 매일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지 않는 종류의 말이었다.

서소문 고가차도. 1966년에 세워진 것이다. 안씨보다 나이가 비슷했다. 콘크리트가 벗겨지고 철근이 드러난 곳을 볼 때마다, 안씨는 자기 무릎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닳는 건 다 비슷하니까.

그는 감리단장이었다. 수십 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구조물이 안전한지 확인하는 사람. 남들이 그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먼저 올라가서 살피는 사람.

5월 26일 오후 2시 31분. 상판이 무너졌다.

가족은 뉴스를 통해서야 알았다. 텔레비전 속 자막이 아버지의 현장이라는 것을, 아들이 먼저 알아챘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아들이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라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가족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이라고.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이런 말들은 죽고 나서야 세상 밖으로 나온다. 살아 있을 때는 그냥 아버지였다. 새벽에 일어나는 아버지. 도시락을 들고 나가는 아버지.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날 도시락은 현장 사무실 책상 위에 있었을 것이다. 뚜껑을 열지 않은 채로. 점심때 먹으려고 놓아둔 것을. 누가 그걸 치웠을까. 아무도 모른다.

밥, 김치, 계란말이. 돌아와서 먹을 줄 알았던 것들.

아내는 다음 날도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을 것이다. 거실에 불이 꺼져 있었을 것이다. 식탁 의자가 당겨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 → 태그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소문 희생자는 제 아버지” 약사 유튜버 부친상…약국 폐업위기 속 안타까운 사연 — twig24, 2026년 5월 29일

한 줄 요약: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로 숨진 감리단장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상을 증언했다.


작가의 말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는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뉴스는 붕괴의 순간을 보여주지만, 저는 그 전의 새벽이 궁금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던 사람. 그 반복이 멈춘 다음 날 아침의 고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