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이 끊긴 지 사십 분째였다.
방태주는 편의점 앞에 차를 대고 엔진을 껐다. 창문을 내리자 오월의 밤공기가 들어왔다. 축축하고 달았다. 어디선가 치킨 냄새가 섞여 있었다.
글로브박스에서 반장갑을 꺼내 꼈다. 검정색 면장갑인데 엄지와 검지 끝이 닳아 살이 삐져나왔다. 잘라낸 건지 뚫린 건지 본인도 모른다. 이 장갑 없이는 남의 차 핸들이 미끄러웠다. 손에 땀이 많아서. 서른 살 때부터 그랬다.
전화기 화면을 켰다. 11시 47분. 금요일 밤인데 콜이 뜸했다. 올해 자기가 칠십이라는 것을 가끔 잊고, 가끔 떠올린다.
공장이 무너진 건 스물여섯 해 전이었다. 두 억이 세상의 끝 같았다.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받던 날, 아내가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사왔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마셨다. 커피가 뜨거웠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 뒤로 뭐든 했다. 그리고 대리운전이 왔다. 밤에 일하는 게 의외로 좋았다. 낮에는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고개가 숙여졌는데, 밤에는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재작년 겨울, 뒤에서 들이받혔다. 일 년 반을 쉬는 동안 빚이 다시 자랐다. 풀처럼. 두 번째 파산을 신청했을 때는 법원 복도가 익숙했다. 자판기 커피도 값이 올라 있었다. 아내는 오지 않았다. 삼 년 전에 먼저 갔으니까.
전화기가 울렸다. 강남역 부근. 방태주는 장갑 낀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매일 다른 차를 몬다. 한 번도 자기 차였던 적 없는 차들이다. 손님이 뒷좌석에서 잠든 밤이면 백미러로 그 얼굴을 본다.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 넥타이가 풀려 있다. 저 사람도 나중에 이렇게 될까,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손님이 내리고, 차 문이 닫히고, 그는 골목으로 걸어 나온다. 다음 콜을 기다린다. 하루에 여덟만 원. 열 시간을 달려서.
새벽 세 시, 마지막 콜을 끝내고 라디오를 켰다. 어떤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제목은 모른다. 다만 그 목소리가 조용해서, 집 앞에 도착하고도 삼십 초쯤 더 앉아 있었다.
순응이라고 했다. 이대로 순응하면서 살겠다고. 그 말이 체념인지 용기인지는 본인도 모른다.
다만 내일도 장갑을 낄 것이다.
노래가 끝났다. 엔진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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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평생 일했는데 남은 건 빚뿐…’추적60분’이 추적한 노후 파산의 충격적 현실 — 위키트리, 2026년 5월 29일
한 줄 요약: IMF 때 공장 부도로 첫 파산, 교통사고 후 두 번째 파산을 신청한 70세 대리운전 기사의 이야기.
작가의 말
“순응하면서 살겠다”는 한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순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매일 밤 끼는 장갑의 감촉을 뉴스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