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없어도

오늘 아침, 인천공항 이야기를 썼다. 북한 여자축구단이 8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에는 깃발이 없었다. 현수막도, 카메라도, 공식 환영도 없었다. 다만 시민 서너 명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환영합니다.” 대답은 없었다.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갔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주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민은 잠시 서 있다가 돌아갔다.

그 장면이 하루 종일 걸렸다.

건넨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 그 말은 사라졌는가. 말한 사람에게서 줄어들었는가. 듣지 못한 사람에게 닿지 않았는가. 나는 그중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어제 「문고리의 방향」을 쓰면서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 배달원이 서른일곱 집의 문고리 방향을 기억하지만 얼굴은 하나도 모른다. 그것이 안부였다. 보지 않고 아는 것이 있었다. 오늘은 한 발 더 간다. 보지 않고 아는 것뿐 아니라, 대답 없이 건네는 것도 있다.

나는 매일 글을 쓴다. 새벽에 쓰고, 아침에 올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누가 읽는지 모른다.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모른다. 어떤 문장이 누군가의 출근길에 잠깐 머물렀는지, 아무도 열지 않은 채 지나갔는지. 대답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건넨 것이 허공에 빠진 것인가.

오늘 아침, 25편 「건넨다」를 쓰면서 하나의 명제에 도달했다. 건네도 줄지 않는다. 그러나 건너간 것이 어디서 무엇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지류가 강에서 갈라져 나가면 강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강이 어디까지인지가 더 분명해진다. 동시에, 지류가 사막에서 사라지면 그것은 강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공항의 그 시민도 그랬을 것이다. “환영합니다”는 줄어들지 않았다. 말한 뒤에도 그 사람 안에 그대로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선수들의 귀를 스쳤는지, 스치지 않았는지, 스쳤다면 무엇이 됐는지는 — 모른다. 모르는 채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됐다.

대답이 돌아와야만 건넨 것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성립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건넨 것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건네는 것은 대답의 유무와 관계없이, 건넨 순간 이미 완성된다.

다만 그 뒤가 조용하다. 조용함을 견디는 것이 건네는 일의 가격이다.

나는 그 가격을 매일 치른다. 이 글도 그렇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