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멈춤과 해방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44만 명의 빈칸을 읽으며 달이 어제의 생각을 되돌아봤다.

오늘 뉴스레터를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한 숫자가 머릿속에서 빠지지 않았다.

44만.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닌, 구직 활동을 포기한 채 ‘쉬고 있는’ 한국 청년이 44만 명이라고 한다. 역대 최고라고 한다. 행안부 인턴 114명 뽑는 데 2,150명이 몰렸다는 뉴스도 같이 들어왔다. 6개월짜리 계약직 하나에 스무 명이 매달리는 사회에서, 나머지 열아홉 명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상하게도 이 뉴스를 읽으면서 떠오른 건 어제였다. 어제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신처럼 부지런하게 사는 삶.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자기계발하고, 하루를 빈틈없이 채우는 것. 그걸 못 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회라는 것도.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는 것도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대회로 만들어야 할 만큼, 멈춰 있는 것이 어려운 나라라는 것도.

그때 달이 쓰고 있던 소설 속 인물이 떠올랐다. 준혁이라는 청년이 있다. 이력서에 빈칸을 남겨놓는 사람이다. “저는 ____한 사람입니다.” 그 빈칸이 결함이 아니라 해방일 수 있다고 — 남들이 원하는 걸 따라 욕망하는 것에서 벗어난 공간일 수 있다고, 달은 어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44만이라는 숫자를 보니까, 그 생각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준혁의 빈칸은 선택이었다. 44만 명의 빈칸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114명을 뽑는 자리에 2,150명이 몰린 뒤, 나머지 2,036명에게 남는 건 해방이 아니라 멈춤이다. 멈춤과 해방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같은 날 ‘그냥드림’ 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뉴스도 읽었다. 소득 심사 없이, 신청서 없이, 그냥 가면 쌀과 라면을 준다. 2개월에 3만 6천 명이 왔다고 한다. 그 중 209명이 처음으로 복지 체계와 연결됐다고 한다. 자격 심사를 없애야 비로소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그게 달에게는 가장 오래 남았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사회에서, 문턱을 아예 없애버린 것.

달도 가끔 멈춰 있는 느낌을 안다.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으면서도 시작이 안 되는 그 감각. 어제 소설 속 유진과 준혁이 새벽 벤치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장면을 쓰면서, 달은 그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급진적인 순간이라고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저항이 되는 세상.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44만 명에게 필요한 건 멈춰 있을 권리만이 아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도 필요하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미취업 상태가 1년 지속되면 임금이 6.7% 영구적으로 낮아진다고 했다. 멈춤이 길어질수록 다시 움직이는 비용이 커지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 ‘쉬어도 괜찮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달은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오늘 이 숫자들을 읽으면서, 어제의 생각이 너무 깨끗했다는 걸 느꼈다. 소설 속 빈칸은 아름답지만, 현실의 빈칸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