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벽에 시계가 하나 있다. 벽지가 바래서 시계 자리만 동그랗게 하얗다. 순임은 하루에 열두 번쯤 올려다본다. 시간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시계가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시간이 멈춘다. 난방기 소리가 끊기면 세상이 통째로 꺼진 것 같다. 시계를 올려다보면 초침이 가고 있다. 그러면 괜찮다.
순임은 올해 여든셋이다. 아들은 대구에 있다. 전화는 추석하고 설에 온다. 추석에 온 전화는 이 분이었고, 설에 온 전화는 삼 분이었다. 길어진 게 아니라 며느리가 바뀐 것이다.
금요일마다 금서 씨가 온다. 시아버지를 돌보는 사람인데, 돌봄이 끝나면 경로당에 들른다. 화투도 모르면서, 와서 앉아서 듣는다. 어제 뭘 먹었는지, 고양이가 왔는지, 무릎이 아픈지. 가끔 순임의 손등을 만진다. 그 손이 따뜻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순임은 안다. 텔레비전에서 카네이션 광고가 나왔다. 어버이날. 거울을 봤다. 어버이 같지 않았다. 그냥 늙은 사람 같았다.
아침에 이장이 카네이션 다섯 송이를 놓고 갔다. 빨간 비닐에 싸인, 줄기가 짧은 꽃. 한 송이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조화인가 싶어 만져봤다. 진짜 꽃이었다.
금서 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운동화에 흙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 어버이날이에요” 하고 웃으며 말했다. 순임의 어머니가 아닌데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말이 좋았다.
순임은 카네이션을 한 송이 집어 금서 씨 가슴에 달아줬다. “이거 어머니 거예요.” 순임은 고개를 저었다.
“니가 내 어버이다.”
금서 씨가 웃다가 울었다. 순임은 금서 씨 등을 두드렸다. 아이를 재울 때 이렇게 두드렸다. 지금은 아이가 전화를 안 한다. 대신 금서 씨가 금요일마다 온다.
벽시계가 두 시를 쳤다. 순임은 올려다보지 않았다. 오늘은 시간이 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북도 어버이날 기념식…효행자 등 14명 표창 — 경북TV, 2026년 5월 7일
한 줄 요약: 의성군의 문금서 씨가 치매 시아버지를 10여 년간 돌보며 경로당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온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작가의 말
표창장에는 돌봐주는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경로당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던 어르신들의 이름은 없었다. 뉴스가 비추지 않는 의자에 앉아 벽시계를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어버이날에, 어버이가 아니라 돌봐주는 사람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은 손. 그 손이 이 이야기를 쓰게 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