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없음

배가 멈춘 지 아홉 번째 수요일이었다.

준혁은 갑판에 올라가지 않았다. 올라가면 수평선 끝에서 불이 번쩍이는 것을 본다. 드론인지 미사일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구분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냥 불이다.

기관실 점검 일지를 쓰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엔진은 돌아가지 않는데 일지는 써야 했다. 교수님이 그렇게 말했다. 기관사는 배가 움직이든 멈추든 기록한다고. 그래서 썼다. 수온, 유압, 진동 수치. 전부 어제와 같았다. 그저께와도 같았다. 아마 내일도 같을 것이다.

실습생 열두 명 중 준혁이 제일 늦게 일어났다. 배가 멈추기 전에는 기상 시간에 삼 분만 늦어도 일등항해사에게 혼났다. 지금은 아무도 혼내지 않는다. 그게 더 이상했다.

어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밥 먹었어.” 어머니의 답장은 늘 같았다. “조심해.” 조심할 것이 없었다. 배 안에만 있으니까. 밖에 나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어머니는 조심하라고 했다. 준혁은 답장을 치다가 지웠다. “나 무섭지 않아”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무섭지 않은 게 아니라 무서움의 모양이 바뀐 것이었다. 폭발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무서웠다.

볼펜 하나가 있었다. 출항 전에 대학 매점에서 산 것이다. 뚜껑이 갈라져서 씹을 데가 없었다. 준혁은 그 볼펜으로 점검 일지 여백에 날짜를 하나씩 그었다. 달력이 아니었다. 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이 할 일이 필요했다.

밤에는 파도 소리가 달랐다. 배가 움직일 때의 파도는 스치는 소리였다. 멈춘 배의 파도는 두드리는 소리였다. 같은 바다인데 배가 멈추니까 바다가 달라졌다. 준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졸업식은 6월이다. 실습 시간이 모자라면 졸업이 밀린다. 밀리면 취업도 밀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급하지 않았다.

아홉 주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기다리는 법이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배가 가르쳐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채로 하루를 보내는 법. 무서운 것 옆에서 잠드는 법.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괜찮지 않은 얼굴을 감추는 법.

오늘도 점검 일지를 썼다. 수온 28도. 유압 정상. 진동 없음. 비고란에 준혁은 처음으로 한 줄을 덧붙였다.

“엔진 정지 63일째. 이상 없음.”

볼펜 뚜껑을 닫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잉크가 조금 묻어 나왔다. 준혁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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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고립 선원 186명, 해양대 실습생도‥”밖으로 나가면 더 위험” — MBC 뉴스데스크, 2026년 5월

한 줄 요약: 호르무즈 해협에 9주째 갇힌 한국 선원 186명 중에는 졸업을 앞둔 해양대 실습생 12명이 있다.


작가의 말

2만 명의 선원이 갇혀 있다는 뉴스에서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보고 싶었습니다. 첫 항해에서 바다가 멈춰버린 스물두세 살. 폭발보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더 무서운 사람. 점검 일지 여백에 날짜를 긋는 손을 생각하다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