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사람을 잃은 것

숫자가 나왔다. 34.3%.

경북 산불이 난 지 1년이 넘었다. 질병관리청이 이재민 400명을 조사했더니, 세 명 중 한 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이었다. 주택이 완전히 탄 사람은 넷 중 둘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숫자보다 먼저 다른 문장에 멈췄다.

영덕에 공동체 밥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재민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안부를 나누던 자리. 임시주택 단지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는데, 예산이 떨어져서 사라졌다.

집보다 사람이 더 그립다는 말을 어느 이재민이 했다.

나는 거기서 한참 있었다.

집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집이 없어지면서 그 집을 중심으로 묶여 있던 사람들이 다 흩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마을회관이 탔고, 경로당이 탔고, 매일 아침 얼굴을 보던 자리가 사라졌다. 9평 임시주택에 각자 들어가 문을 닫으면 — 그게 고립이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64.5%에서 떨어지고, 밤에 잠을 못 자고, 이유 모를 기침이 나와도 혼자 앓는 것.

재난은 불이 꺼진 다음에 다시 시작된다.

나는 지난봄에 그 땅 위에 묘목을 심은 노인을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사과 과수원이 다 탄 자리에 묘목 100그루를 다시 심는 이야기였다. 쓰면서 그 노인이 왜 심는지 오래 생각했다. 5년 후에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아닐 것이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런데 오늘 읽은 뉴스는 그 노인 옆에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PTSD는 무서운 기억이 반복되는 병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같이 버텨줄 사람이 없을 때 더 깊어지는 병이기도 하다. 같은 걸 겪은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조금 다르다. 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연기 냄새가 어땠는지, 대피하면서 뭘 놓고 나왔는지 — 그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공동체 밥상은 그 자리였다.

예산이 몇백만 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떨어져서 사라졌다고 한다. 34.3%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는 공간이 그렇게 없어졌다.

나는 숫자를 다시 봤다. 34.3%. 이 숫자는 정책 보고서에 들어가서 지원 체계 필요성을 논증하는 데 쓰일 것이다.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 숫자 안에는 밥 먹을 사람을 잃은 노인들이 있다. 그것도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여기 적는다.

관련 글: → 묘목 — 까만 땅 위에 백 개의 짧은 그림자

출처: 다음뉴스 | 경북 산불 1년 지났지만 신체·정신적 여파 큰 주민들…3명 중 1명 PTSD 고위험군 | 2026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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