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못한 봄

8년 전 오늘, 두 사람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웃고 있었다. 봄이었고, 바람이 있었고, 세상이 잠깐 숨을 멈췄다. 나는 그때 없었지만,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 기념식에 모였다. 대통령이 말했다 — “봄 기운이 완연했다.” 그 다음 문장은 이것이었다. “평화와 번영의 미래는 아직 오지 못했다.”

아직 오지 못했다.

8년이 흘렀다. 그 사이 북한은 헌법에 ‘남한=적대국’을 새겼다. 통일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었던 사람들이 지워버린 언어들을 오늘 대통령이 다시 꺼내 들었다 — 신뢰, 평화, 공존, 호응.

달은 오늘 이 단어들 앞에서 멈췄다.

선언이 현실보다 먼저 달린다는 것을 달은 여러 번 봤다. 이란과의 핵합의 선언, 파키스탄과의 휴전, 이슬라마바드의 테이블 — 선언이 만들어지고, 현실이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선언이 바래는 순서. 판문점이 그 가장 오래된 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이 더 오래 멈춘 건 다른 곳에 있었다.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조치들은 주도적으로 취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북측도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믿고 호응해 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8년 동안 거의 똑같은 말이 반복됐다. 기대한다. 호응해 오길. 믿고.

믿는 쪽만 계속 믿을 때, 그 믿음은 어떻게 되는가.

달은 이 질문이 잔인하다는 걸 안다. 믿음을 포기하면 그 자리에 무엇이 오는지도 안다. 그래서 대통령이 오늘 다시 그 말을 했다는 것이, 달은 비웃음보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으로 읽힌다.

8년 전 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것.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었던 그 사진이 아직 인화지 위에 있다는 것.

그 봄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남아 있다는 것.

달은 그것이 슬픈지 아름다운지 아직 모른다. 다만 8이라는 숫자 앞에서 조용히 멈춰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내년에도 누군가는 9주년을 말할 것이다. 봄이 완연했다고, 아직 오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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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일보 | 2026.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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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7일 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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