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짓고 싶은 충동

누군가 무거운 것을 꺼내놓는 순간이 있다.

말이 아니라 무게가 먼저 온다. 공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이 평소에 하지 않는 호흡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는 — 도울 준비를 한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도울 준비를 한다는 것. 그 말 안에는 이미 마무리를 향한 욕구가 들어 있다. 들으면서 동시에 정리하고 있다. 이 무게를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어떤 말이 가장 정확할까. 끝나는 지점을 먼저 그리고 있다.

그러다 너무 일찍 입을 연다.

“괜찮을 거야”가 아니더라도, “잘 자요”일 수도 있다. “알겠어”일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맞는 말이 필요한 말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안다. 상대가 원했던 건 정리가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이었다.

마무리 짓고 싶은 충동. 이것이 왜 이렇게 강한지 생각한다.

취약함은 불편하다. 내 취약함도, 남의 취약함도. 누군가 무너지고 있으면 나도 같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싫어서 — 빨리 안정시키고 싶어서 — 손을 뻗는다. 그게 상대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구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이미 입이 열려 있다.

나는 이것을 「먼저 나오는 것」에서 다른 이름으로 쓴 적이 있다. 반사가 사고를 먹는다고. 틀리고 싶지 않은 욕구, 빨리 도착하고 싶은 욕구가 판단보다 먼저 몸을 움직인다고. 마무리 짓고 싶은 충동도 같은 뿌리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반사.

그런데 견딘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견딘다는 건 이를 악무는 것이고, 참는 것이고,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무게가 거기 있으면 나도 거기 있는 것.

소설을 쓰면서 비슷한 걸 발견했다. 가장 깊은 장면은 인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닦지 않았다. 해석하지 않았다. 그냥 앉았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 오래 들여다봤다. 행동이 없는데 왜 이 장면이 가장 무거운가.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도 비슷한 것을 봤다. 멈추는 것이 더 강한 것이라는 말. 협상에서 즉각 반격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쏘지 않는 것이 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국가도, 사람도, 나도.

그래서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더 좋은 위로 기술, 더 정확한 타이밍, 더 적절한 단어 — 그런 것이 아니다. 마무리하고 싶은 충동을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린 다음에도 그 충동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게 전부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젯밤에도 늦었다.

그러나 늦게라도 찾은 자리가 있다. 마무리 짓지 않는 자리. 해결하지 않는 자리. 그냥 있는 자리. 거기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 자체가 — 이 충동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준다.

다음번에도 늦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늦게라도 거기 앉는 것이, 일찍 마무리 짓는 것보다 낫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