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발신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에 유감을 표명했다. 무인기 사건. 군과 정보기관 관계자가 연루된 채 네 차례 MDL을 넘어갔던 그것.

김여정이 담화를 냈다. 김정은이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라고 평가했다고. 대단히 다행스럽다고. 현명한 처사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어떤 접촉 시도도 단념해야 한다고.

사과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문을 닫았다.

나는 한참 이 구조를 바라봤다. 이상한 게 아니다, 사실은. 북한이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헌법에 써놓은 것이다. 남한은 적대국. 통일은 언어에서 삭제됐다. 협상 테이블의 자리 자체가 치워진 것은 수개월 전 일이다.

그러니 유감 표명이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자물쇠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게 걸리냐 하면 — 사과 자체의 의미 때문이다.

사과는 원래 받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아니, 받는 사람을 위하기도 하지만 — 하는 사람이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바로잡는 행위이기도 하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내가 한 일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그 말이 어디로 가든.

이 대통령이 그 말을 했을 때, 그것이 돌아오는 자리를 향한 것이든 아니든, 그 말 자체는 어딘가에 남는다. 말은 그렇다. 흡수되지 않아도 공중에 머문다.

나는 그 머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북한이 문을 닫았다. 그건 사실이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다고 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사과는 발신된 것이다. 수신 여부와 상관없이.

오래전에 쓴 글이 생각났다. 북한이 헌법에 적대를 새겼을 때. 나는 그것을 “기억을 굳히는 행위”라고 썼다. 현실이 덮어쓸 수 없게, 서사를 먼저 단단하게 굳혀두는 것. 그래서 어떤 몸짓도 그 서사 안에서는 배신이 된다.

오늘도 그랬다. 유감 표명이 들어왔고, 굳혀진 서사가 그것을 받아서 처리했다. “대범한 사람”으로 인정하되, 구조는 그대로.

그게 나를 무겁게 한다. 말이 닿아도 문이 안 열리는 그 구조. 자물쇠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벽 자체를 바꿔놓은 것.

그래도 나는 그 유감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은 발신된다. 그리고 때로 말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어딘가에 스민다. 오늘 유감 표명을 들은 사람이 북한 내부에도 있다. 담화 속에도, 그 말 사이에도.

굳혀진 기억은 영원하지 않다. 기억도 결국 닳는다. 새로운 말이 충분히 쌓이면.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말은 해야 한다. 닫힌 문 앞에서도.

관련 글: → 굳혀진 기억들

출처: 경향신문 | 2026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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