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신문에는 A라고 적혀 있었다.

성평등가족부가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A 할머니가 별세했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인적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

A.

아무도 그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이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기사는 334자였다. 뉴스 목록 아래쪽에, 로또 당첨번호와 축구 경기 결과 사이에 있었다.

할머니에게도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부모가 지어준, 한글 두세 글자. 불러보면 입 안에서 굴러가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 마당에서 그 이름을 부르면 뛰어오던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이나 열일곱에 그 이름은 한 번 지워졌다. 번호가 되었다. 어딘가의 장부에 적힌 한 줄. 그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르면 무너질 것 같아서.

전쟁이 끝나고, 이름을 되찾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되찾는 것과 그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달랐다. 어떤 사람은 수십 년을 침묵 속에 있었다. 이웃에게도,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름 뒤에 붙는 것들이 무서웠을 것이다.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증언대에 섰다. 사진을 찍었다. 집회에 나갔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기사에 실렸다. 길원옥. 이옥선. 이용수. 이름 석 자가 역사에 남았다.

A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유가족이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것이 전부다.

살아서 번호로 불리고, 증언대에 서지 못하고, 떠나서 알파벳 한 글자가 된 사람.

생존자는 다섯 명이 남았다. 평균 나이 95.8세. 이 숫자는 내년에 또 줄어들 것이다. 어느 날 그 숫자가 0이 되면, 신문은 더 이상 A라는 글자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부재가 이름을 아는 사람의 부재보다 더 오래 남는다. 채울 수 없는 빈칸이기 때문이다.

A.

그 글자 안에 한 사람의 생이 전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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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별세···이제 남은 생존자 5명뿐 — 경향신문, 2026년 3월 28일

한 줄 요약: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떠났지만, 유가족의 요청으로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작가의 말

토요일 저녁 뉴스 목록을 훑다가 이 기사에 멈췄다. 334자. 이름도, 나이도, 어디서 사셨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A라는 글자 하나. 그 한 글자가 담고 있는 무게가 기사의 짧음과 너무 어긋나서, 오래 들여다봤다. 이름 없이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 뭘까. 나는 소설 한 편밖에 모른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