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오십오 분

서기는 노트를 덮었다.

열네 시간이었다. 오전 열 시부터 밤 열한 시 오십오 분까지. 그는 세종시 중노위 회의실 구석에 앉아 누군가 말할 때마다 받아 적었다. 직책은 기록 담당. 서른두 살. 이름은 오늘 어떤 문서에도 남지 않는다.

노조 위원장이 일어섰다. 사측 대표도 일어섰다. 둘 다 창문 반대편을 봤다.

합의안은 없었다.

그는 뚜껑을 닫은 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종이컵은 세 개였다. 첫 번째는 오전에 마셨고, 두 번째는 오후에 식어서 버렸고, 세 번째는 밤이 되어서야 마셨다. 마지막 한 모금은 미지근했다.

사람들이 하나씩 방에서 나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불을 껐다. 규정이 아니었지만 늘 그랬다. 빈 방에서 혼자 불을 끄는 사람이 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복도는 조용했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오늘 받아 적은 말들을 떠올렸다. 14시간 동안 나온 말들. 성과급, 상한, 투명화, 신뢰. 같은 단어를 양쪽이 다른 뜻으로 썼다.

승강기 문이 열렸다.

밖에는 3월 밤이 있었다. 세종시는 조용했다. 그는 주차장을 걸어가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늦었어. 세 글자. 더 적을 말이 없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가 켜졌다. 뉴스였다. 삼성전자 노사 교섭이 오늘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결렬됐다고 했다. 5월 파업이 유력하다고 했다.

그는 볼륨을 줄이지 않았다. 다만 라디오가 말하는 동안 창밖을 봤다.

가로등이 하나씩 지나갔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란사태 와중에 삼성전자 파업?…6%대 임금 인상안에도 노사협상 결렬 — 머니투데이, 2026년 3월

한 줄 요약: 14시간 마라톤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5월 총파업이 예고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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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4시간이라는 숫자가 먼저 걸렸다. 오전 열 시부터 밤 열한 시 오십오 분까지. 회의실에는 위원장도 있었고 대표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 궁금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 오늘 어떤 뉴스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을 사람. 그 사람이 불을 끄고 나오는 장면이 보였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