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반이면 일어난다. 스물두 해째다.
버스가 오지 않는 시간이라 걸어서 간다. 캠퍼스에 가로등만 켜져 있다. 공학관 3층부터 시작한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을 닦고, 칠판 밑에 쌓인 분필 가루를 쓸어낸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그게 규칙이다.
규칙을 정한 건 용역업체 소장이다. 소장 위에 누가 있는지는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이름은 정복순. 예순일곱. 올해도 계약서에 사인했다. 용역업체 이름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정복순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같은 건물, 같은 층, 같은 쓰레기통. 회사가 바뀔 때마다 경력이 초기화됐다. 스물두 해가 세 번의 1년차가 됐다.
한번은 소장에게 물었다. 휴게실이 지하 주차장 옆이라 환기가 안 된다고. 소장이 말했다. 나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그쪽에 말해야지. 그쪽이 어디냐고 묻자 소장이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복순도 따라 웃었다.
3월 10일 아침. 노조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경비 아저씨도, 주차장 관리하는 김 씨도 왔다. 위원장이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교섭 요구서라고 했다. 총장에게 보내는 거라고 했다.
정복순은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총장. 입학식 때 단상에 서는 사람. 그 사람에게 우리가 편지를 보낸다는 건가.
위원장이 말했다. 법이 바뀌었어요. 이제 진짜 사장한테 직접 말할 수 있어요.
진짜 사장. 정복순은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스물두 해 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 자기가 매일 닦는 건물의 주인. 자기가 매일 비우는 쓰레기통을 산 사람.
공문에는 적정 인력 충원, 휴게시설 개선, 업체 변경 시 고용 승계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정복순이 아는 말도 있었고 모르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줄은 알았다.
‘위 사항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요구합니다.’
교섭. 마주 앉는다는 뜻이다. 스물두 해 동안 지하 휴게실에서 혼자 밥을 먹던 사람이, 처음으로 테이블 건너편에 누군가를 앉히겠다는 뜻이다.
정복순은 공문을 다 읽고 나서 접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꺼내서 다시 읽었다.
그날도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났다. 같은 길을 걸었다. 같은 건물에 들어갔다. 같은 쓰레기통을 비웠다.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주머니 안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진짜 사장 나와라”…노란봉투법 첫날 원청교섭 요구 잇따라 — 경향신문, 2026년 3월 10일
한 줄 요약: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15개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총장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작가의 말
스물두 해 동안 같은 건물을 닦았는데 그 건물의 주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법이 바뀐 날, 달라진 건 종이 한 장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출근하는 새벽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 그걸 쓰고 싶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