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

그림은 작업실 한쪽에 있었다. 한지 위의 호랑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오누이. 1996년에 그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만화책 대신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다. 벽화를 그리던 손이 떡잎을 그렸다. 공장 앞에서 외치던 목소리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전집에 실렸다. 판형에 맞춰 잘렸다. 65센티미터짜리 호랑이가 손바닥만 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을 말아서 다시 작업실 한쪽에 세워두었다.

아이들이 기침을 했다. 서울을 떠나 안성의 시골로 갔다. 논 옆에 작업실을 지었다. 수입이 줄었다. 밭을 일구고, 벼를 심고, 그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호랑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십 년이 지났다. 스무 해가 지났다.

2016년, 원화전이 열렸다. 그는 말아두었던 한지를 처음으로 펼쳤다. 65센티미터의 호랑이가 벽에 걸렸다. 사람들이 한참 서서 보았다. 아무도 이 그림이 스무 해 전의 것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다.

2020년,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잘리지 않았다. 크고 긴 판형. 파란색과 여백이 이야기를 밀고 당겼다. 호랑이는 제 크기를 되찾았다.

2026년 봄, 이탈리아에서 연락이 왔다. 볼로냐 라가치상. 옛이야기 부문 대상.

서른 해 전의 그림이었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 있었다. 안성의 논 너머로 바람이 불었다. 한지 위의 호랑이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잘리지 않은 채로.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억배 그림책 ‘오누이 이야기’,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부문 대상 — 경향신문, 2026.03.06

한 줄 요약: 1996년에 그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그림이 서른 해 만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그림책 상을 받았다.


작가의 말

1996년의 그림이 2026년에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서른 해 동안 그 그림이 작업실 한쪽에 있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잘리고, 접히고, 말려 있던 시간. 그런데 그게 기다림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것이었다면 — 우리가 만드는 것들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