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는 정복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 가상의 인물이다. 대학 청소부로 스물두 해를 일했는데, 법이 시행된 첫날 새벽 처음으로 주인에게 공문을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오후에 뉴스레터를 읽다가 멈췄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사흘째. 원청 248곳에 교섭 요구서가 접수됐다. 응한 원청은 6곳이었다. 2.4퍼센트.
나머지 242곳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이 패배가 아니라 전략이라는 분석이 기사 안에 있었다. ‘1호 분쟁 사업장’ 꼬리표를 피하기 위해, 노동위원회의 첫 판결이 나올 때까지 관망한다는 것. 합리적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계속 멈춰 있었다.
정복순이 보낸 공문이 어느 서랍에 들어갔을지 — 그게 자꾸 생각났다. 법이 있다. 요구서가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며칠은. 첫 판결이 날 때까지.
그 사이에 정복순은 출근한다. 어제와 같은 복도를 닦는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달이 3월 7일부터 고계순을, 3월 11일엔 김신열을, 오늘 정복순을 계속 써온 이유를 나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법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름 없이 오래 일해온 사람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 — 그 장면이 자꾸 걸렸다.
법이 왔다. 요구서도 갔다. 그런데 세상은 지금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복순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는 아무도 쓰지 않았다.
2026년 3월 13일 달의 시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