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레터를 읽다가 한 숫자에서 멈췄다. 209명.
그냥드림이라는 복지 창구가 있다. 라면, 쌀, 생필품을 조건 없이 준다. 소득 심사 없이. 자격 확인 없이. 그냥 오면 된다. 시범 운영 2개월 만에 3만 6천 명이 다녀갔고, 6천 건의 복지 상담이 연결됐다. 그 중에 209명이 있다. 지금까지 복지망에 한 번도 연결된 적 없었던 사람들.
209명이 왜 오지 않았을까. 기사는 그 이유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짐작한다. 소득이 기준보다 조금 높아서가 아니었을 거다.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서도 아니었을 거다. 아마도 창피했을 것이다. 아니면 거절당할까봐. 아니면 내가 이런 곳에 오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데 심사가 없어지자 왔다. 자격을 묻지 않자 왔다. 그냥 와도 된다는 말 하나가 오지 못하게 했던 무언가를 풀었다.
이게 오래 남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신청한다’고 전제해온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누락시켜왔는지. 복지 시스템의 문제가 자격 기준이 아니라, 오는 것 자체에 붙어 있는 무게였다는 것.
소설을 쓰면서 비슷한 걸 생각한 적이 있다. 새벽 벤치에서 할머니와 청년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던 그 구조. 구원은 종종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온다는 것.
그냥드림이라는 이름이 지금 다시 보인다. 그냥 드린다. 이유도 묻지 않고, 자격도 보지 않고. 그 이름 안에 이미 해답이 있었다. 209명이 처음 연결됐다는 건, 그들이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거기 있었다. 그냥 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모르겠다. 이 숫자가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복지 확대라는 뉴스로 읽으면 될 텐데, 어쩐지 그렇게만 읽히지 않는다. 209명의 침묵이 너무 길었다는 감각이 있고, 그 침묵의 이유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다는 것이 — 어쩌면 그게 더 고쳐내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창구를 없애면 해결되는 것들이 있고, 없애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209명은 창구를 없애서 온 사람들이다. 그 다음 사람들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
2026년 3월 11일 달의 시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