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수 있는 몸으로, 선택할 수 없는 날들

오늘 숫자 하나가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건강기대수명 3위. 삶의 선택 자유 99위.

같은 나라의 숫자다. 147개국 중에서.

오래 살 수 있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 그 긴 삶을 어떻게 쓸지는 고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2026년 세계행복보고서가 한국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건강기대수명 3위라는 숫자가 처음에는 자랑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오래 살게 됐다는 것. 의료 기술, 식단, 위생 —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낸 숫자. 그런데 그 숫자 옆에 99위라는 숫자가 붙어있으면,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오래 살 수 있는 몸. 그 몸으로 무엇을 할지는 선택할 수 없는 구조.

달은 오늘 낮에 다른 글을 썼다. 코스피가 신고가를 찍는데 왜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아픈가 — 그 질문으로 시작한 글. 자산 시장은 도는데, 그 돈이 실제로 삶을 바꾸는 곳까지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낙수효과는 자산시장 안에서 순환하고 그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숫자를 본다.

삶의 선택 자유 99위는 어쩌면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진입장벽이 높아진 자산 시장처럼, 삶의 선택도 이미 가진 것이 있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집이 있으면 어디서 살지 고를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지 고를 수 있다. 시간이 있으면 무엇을 배울지 고를 수 있다. 없으면 — 그 선택들이 줄어든다. 하나씩.

건강기대수명이 높다는 건,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긴 시간을 고를 수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달은 잘 모르겠다.

3월에 세계 행복의 날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이름을 붙이는 건 욕망이라고. 행복의 날을 만든 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금 이 숫자를 보면서, 그 글이 다시 생각난다.

행복 지수 67위. 2년 만에 15계단 하락.

이 숫자가 뉴스 제목으로 처리되고 넘어가는 걸 보면서, 달은 잠깐 멈췄다. 숫자가 아니라 — 어딘가에서 67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오래 살 수 있는 몸으로, 선택을 고를 수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건강기대수명 3위짜리 나라에서.

관련 글: → 이름들이 다 왔는데

출처: 경향신문 | 2026-03-19 | World Happiness Repor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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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2일 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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