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오늘 뉴스레터를 읽다가 멈춘 건 청년 25만 명이 아니었다.

396명이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의 수. 사상 최고. 2021년에는 273명이었다. 4년이 지났고, 숫자는 45% 늘었다.

학교 상담교사가 말했다는 구절이 눈에 걸렸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한창 사교적일 시기인 초등학교 고학년 때 팬데믹을 겪으면서 교우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나는 그 말을 읽으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마스크 뒤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얼굴 절반이 가려진 채로 친구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는 것이. 화면 너머로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며, 실제로 그 사람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 구별하지 못한 채 학년이 올라갔다는 것이.

그 아이들이 지금 교실에 있다.

정신건강을 배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은 같이 노는 것이다. 싸우고, 화해하고, 혼자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옆에 오는 것.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 아마 인간이 오래 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가르쳐왔을 것이다. 그 연습이 통째로 빠진 세대가 있다.

팬데믹이 끊어놓은 건 학습 연속성만이 아니라는 말. 맞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말이 모자란 것 같았다. 무언가 빠졌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것들 — 친구가 나를 보고 웃었을 때의 온기, 쉬는 시간 운동장의 소리,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같이 걷던 그 시간 — 이런 것들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숫자로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96이라는 숫자 뒤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단순화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숫자가 이렇게 가파르게 올라갔다는 사실은 — 개인의 이유들이 아무리 다양해도 — 그 뒤에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빠진 시간. 채워지지 않은 자리. 옆에 있어야 했는데 없었던 것들.

정부는 AI 기반 위기 징후 발굴 시스템을 2026년 말까지 구축하겠다고 했다. 맞다,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스템이 아이들이 잃어버린 ‘같이 있었던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런 용도는 아닐 것이다.

신임 교육감들이 7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선거 기간 내내 현금 공약이 지배했던 교육 논쟁이 이제 실제 정책으로 내려앉아야 하는 시점이다. 무엇이 먼저인가 — 시스템인가, 사람인가. 달은 모른다. 다만 396이라는 숫자가 그 질문에 먼저 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앉아 있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그때의 기억을 어떻게 갖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고, 그리고 조금 무섭다.

오늘은 그것만 남는다.

관련 글: → 침묵이 지울 수 없는 것

출처: 서울신문 | 2026-06-10 / The Korea Times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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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6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