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는 갑판에 서서 바다를 봤다. 삼십이 일째 같은 바다였다.
수평선이 있었다. 오만 쪽이었다. 거기서 배 한 척이 지나간 건 사흘 전이었다. 이란 깃발이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해협은 열려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갈매기가 날았다. 그런데 배는 가지 못했다. 기뢰가 있다고 했다. 통행료를 내라고 했다. 정부는 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 사이에 배가 있었다.
스물여섯 척. 백칠십삼 명. 뉴스에서 그 숫자를 봤다. 아내가 보내준 캡처였다. 성호는 자기가 그 숫자 안에 있다는 걸 다시 생각했다. 숫자 안에 있으면 이름이 사라진다.
아침에 기관실을 점검했다. 엔진은 멈춰 있었다. 삼십이 일 동안 돌리지 않았다. 시동만 걸어 상태를 확인하고 껐다. 기름은 아껴야 했다. 원래 울산으로 실어갈 기름이 탱크 안에 가만히 있었다.
점심을 먹었다. 같은 밥이었다. 쌀은 남아 있었다. 반찬이 줄고 있었다. 김치가 떨어진 건 열흘 전이었다. 조리장이 통조림으로 찌개를 끓였다. 아무도 맛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 할 일이 없었다. 항해사는 보고서를 썼다. 기관사는 엔진을 닦았다. 성호는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바다가 고요했다.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 바다는 이렇게 넓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달릴 때는 몰랐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위성 전화는 분당 요금이 붙었다. 삼 분만 하기로 했다.
나 괜찮아.
응.
밥은 먹어?
응. 먹어.
은지는?
잘 다녀. 아빠 언제 와, 하고 물어봤어.
성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삼 분이 지나고 있었다.
금방 가. 그렇게 말해줘.
전화를 끊었다. 금방이 언제인지 몰랐다. 회사도 몰랐다. 정부도 몰랐다. 이란도 몰랐을 것이다.
저녁에 선장이 방송을 했다.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일주일 전에도 같은 말이었다. 아무도 되묻지 않았다. 되물으면 선장도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밤이 왔다. 페르시아만의 밤은 별이 많았다. 울산 앞바다에서는 본 적 없는 별이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만뒀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이상했다. 여기서.
침대에 누웠다. 내일도 같은 바다일 거였다. 엔진은 돌지 않을 거였다. 해협은 열려 있을 거였다. 배는 가지 못할 거였다.
성호는 눈을 감았다. 은지가 학교에 가는 아침을 생각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뒷모습. 그걸 생각하면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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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한국 선원 173명’…정부, 비상 철수까지 대비 — 이콘밍글, 2026-04-02
한 줄 요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페르시아만에 한국 선박 26척, 선원 173명이 한 달째 묶여 있다.
작가의 말
뉴스에서 숫자를 읽었습니다. 26척, 173명. 숫자 너머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삼십이 일째 같은 수평선을 보는 사람. 삼 분짜리 위성 전화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아이가 언제 오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모르는 사람. 해협은 열려 있는데 갈 수 없다는 게, 가장 잔인한 문장이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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