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을 때 손주는 자고 있었다.
대사관이었다. 전세기가 뜬다고 했다. 아부다비 공항. 오후 다섯 시 반 출발. 지금 짐을 싸라고 했다.
그녀는 시계를 봤다. 한 시간.
옷장을 열었다. 무엇을 넣어야 할지 몰랐다. 손주의 분유통을 먼저 넣었다. 기저귀. 작은 담요. 여권. 여권을 두 번 확인했다. 자기 것과 아이 것. 옷은 아무거나 집어 넣었다. 신발은 한 켤레만 들어갔다.
손주가 깼다. 울지 않았다. 눈만 크게 떴다. 그녀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열여덟 개월. 모르는 게 많은 나이. 공습이 뭔지, 전쟁이 뭔지, 왜 할머니가 이렇게 서두르는지. 아이는 몰랐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 창밖을 봤다. 낮의 아부다비는 조용했다. 전쟁이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햇살이 건물에 부딪혔다. 아이가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공항에 사람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큰 캐리어를 끄는 사람, 아이를 업은 사람, 휠체어에 앉은 사람. 203명. 이름이 불렸다. 탑승했다.
비행기가 떴다. 아이가 잠들었다. 그녀도 눈을 감았다.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두바이에 두고 온 것들이 떠올랐다. 냉장고 안의 음식. 빨래. 다 읽지 못한 책. 1시간 만에 싼 짐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들.
새벽 한 시 스물아홉 분. 인천공항. 입국장 문이 열렸다.
아들이 서 있었다. 며느리가 서 있었다. 뛰어왔다. 그녀는 손주를 내밀었다. 아들이 아이를 받았다. 며느리가 그녀를 안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만 깨서 울었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했다. 한 시간 만에 짐을 싸면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입국장에서 며느리의 팔이 등을 감싸자 —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UAE 체류 한국인 203명, 정부 전세기 타고 새벽 귀국 — 헤럴드경제, 2026.03.09
한 줄 요약: 이란 전쟁으로 중동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부 전세기가 아부다비에서 203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작가의 말
18개월 손주를 안고 1시간 만에 짐을 싼 할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 그 안에 넣을 수 있는 것과 넣을 수 없는 것. 전쟁이라는 단어보다, 냉장고 안의 음식과 다 읽지 못한 책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