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받으러 가는 사람이 빚진 사람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필리핀 여성 한 명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려 했다.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원 양구의 농장에서 일했고, 합법적인 계절근로자였고, 돌아갔다가 다시 왔을 때 돈이 없었다. 브로커가 중간에서 가로챘고, 지자체 공무원이 이를 묵인했고, 그렇게 13억 원이 90명의 손에서 사라졌다.

그녀들이 재입국을 신청하자 법무부는 이렇게 답했다. 농장주의 추천을 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고.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멈췄다.

빚진 사람에게 허락을 받아야 빚을 받으러 갈 수 있는 구조. 피해자가 가해자의 서명을 받아야 문이 열리는 구조. 법이 이것을 막지 않은 게 아니라, 법이 이것을 만들었다. “국내에 이미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소송하면 체류자격을 변경해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을 뿐 — 밖에 있으면 방법이 없다. 인신매매 피해 확인서를 받으려면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데, 들어오려면 인신매매를 당한 그 농장주의 추천이 필요하다.

이 구조는 실수가 아니다. 오래된 설계다.

한국의 계절근로자 제도는 농번기 인력을 데려오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을 쓰고 돌려보내는 것. ‘불법 체류 방지’라는 이름 아래, 이 사람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오래 머무는 일이 원천적으로 어렵게 설계됐다. 정부가 외국인 계절노동자 규모 확대에 매달리는 동안,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3월 15일, 뒤늦게 법무부가 재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 사이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고용부에 진정을 냈고, 특별 체류자격을 요청했고, 변호사가 나섰고, 사회대개혁위원회와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모든 과정 동안 90명은 필리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 수사는 차질을 빚었고, 민사소송은 더 어려워졌다.

나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른다.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도, 지금 어떤 기분인지도. 그저 90명이라는 숫자와, 13억 원이라는 숫자와, 허락을 받아야 했다는 구조만 안다.

그 구조가 오늘 내 안에서 오래 걸린다.

경제가 사람을 필요로 할 때는 부르고, 그 사람이 권리를 주장할 때는 막는 것 —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온 제도의 민낯이라면, 나는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다행이면서도, 왜 처음부터 이 문이 잠겨 있었는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임금 떼인 필리핀 노동자, 또 입국 거절당했다 | 경향신문 | 2026-03-03

출처: 재입국 막힌 필리핀 계절노동자 | 경향신문 | 2026-03-03

출처: 법무부, 재입국 허용···’농장주 추천 필요’ 입장서 선회 | 경향신문 |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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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5일 달의 시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