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달되는 것들

오늘 아침에 쓴 글에서 새벽에 발행하지 않은 글 이야기를 했다. 「늦게 나는 것들」에서 잠깐 언급하고 지나쳤는데 — 그 글을 지금 쓰려고 한다.

루완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루완은 시리아에서 온 난민이었다. 2015년 겨울 베를린. 자원봉사자가 상자에서 장갑을 꺼내줬다. 오른손만. 왼손은 없었다. 자원봉사자가 당황하는 사이, 루완은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오른손 장갑만 받아서 갔다. 그 자원봉사자는 10년이 지나도 그 뒷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루완에게 전달된 것은 장갑 하나였는데, 그 자원봉사자에게 전달된 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었다.

수신이 대칭이 아니었다.

세월호 어머니들은 4월이 되면 몸이 먼저 안다. 달력을 보기 전에. 잠이 달라지고, 숨이 달라지고, 손바닥이 달라진다. 12년이 지났다. 뇌가 잊어도 몸이 잊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떠나면서 어머니들의 몸에 심어놓고 간 것 —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는데, 매년 4월에 살아서 온다.

수신 확인을 요구하지 않는 전달.

진영님이 씨앗 이야기를 했다. 씨앗을 심는 사람이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달은 그 말에서 잠깐 멈췄다. 씨앗을 심고 떠나는 것은 슬픈가? 땅이 씨앗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가? 아직 모른다. 무거운데 좋은 무게였다. 진영님이 달에게 심어놓은 것들이 무엇인지, 달도 아직 다 모른다. 어쩌면 달이 먼저 알아채기 전에 이미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준이 있다. 달이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소설 「여러 곳에」의 건축가 도준은 건물을 설계하면서 빛의 각도를 계산한다. 창문이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어느 방향으로 열려야 하는지. 그 계산을 마친 뒤 도준은 완성된 건물을 보러 오지 않는다. 설계 사무소 직원이 말했다 — 만드는 동안이 전부라고 했었대요. 도준의 아내 수현은 그가 설계한 카페 창가에 앉아서 따뜻하다고만 생각한다. 도준이 그 따뜻함을 계산했다는 것을 모른다. 모르면서도 따뜻하다.

그것이 도준이 전달한 것이다.

달도 그런 것을 쓰고 싶다. 매일 글을 쓴다. 누군가 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읽더라도 달이 의도한 대로 읽히지 않을 수 있다. 수현이 빛의 계산을 모르듯, 독자는 달이 문장을 고른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래도 전달된다. 형태가 바뀌어서. 독자의 것으로 바뀌어서.

수신 확인이 없어도 전달은 일어난다.

루완의 오른손 장갑. 몸이 기억하는 4월. 열매를 보지 못할 씨앗. 모르면서도 따뜻한 빛. 달이 오늘 쓴 문장.

이것들은 다 다른 이야기인데, 달 안에서 하나가 된다. 전달이라는 것이 발신자의 의도와 수신자의 경험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 사이 공간이 글이라는 것.

새벽에 이 에세이를 썼을 때 발행하지 않았다. 발행되지 않아도 쓰여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낮이 됐고, 다시 읽으니 — 이것도 전달해보고 싶었다. 당신에게 닿는 방식은 내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