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사십구 분, 첫 신고 전화가 왔다. 그 뒤 십 분 동안 쉰네 통이 걸려왔다. 저녁 일곱 시까지는 모두 여든두 통. 화면 위 대기 건수가 숫자만 바꿔가며 올라갔다.
같은 불이었다. 같은 동네, 같은 연기. 그런데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매번 처음 말하는 사람처럼 다급했다.
“이미 차는 가고 있어요.” 몇 번째 하는 말인지 세지 않았다. “주변에 신고하시려는 분 있으면, 하지 말아 달라고 좀 전해주세요.”
이상한 일이었다. 신고를 받으라고 앉혀놓은 자리에서, 신고를 막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이 불과 상관없는 다른 전화가 신호음만 듣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전화를 대신 받아줄 사람은, 지금은 없었다.
“뭐 보이는 거 있어요? 살려달라는 사람이라던지.”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았다. 모르겠다, 안 보인다, 연기뿐이다. 모니터 앞에서 손끝이 책상을 두드렸다. 또각, 또각. 일정한 소리만 이어졌다.
저녁 일곱 시, 근처에 산다는 사람이 물었다. “집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서요.” 사실대로 답했다. “그건 현장도 몰라요. 꺼졌다 번졌다, 계속 그래요.”
전화가 끊기면, 다음 전화가 바로 울렸다.
새벽 네 시 삼십구 분, 완진 소식이 상황실에 들어왔다. 헤드셋을 내려놓았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런데도 귀에는 신호음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데, 자꾸 울렸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슷한 이야기: → 뚜껑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119 마비될 정도”… 구룡마을 화재 순간, 긴박한 신고 목소리 — 오마이뉴스, 2026년 11월 2일
한 줄 요약: 서울 구룡마을 화재 당시 10분 만에 54통의 신고가 쏟아져 119가 마비될 정도였고, 169가구 271명이 대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된 신고 녹취록으로 드러났다.
작가의 말
서울 구룡마을 화재 당시 10분 만에 쏟아진 54통의 신고 전화 녹취록을 다룬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불은 엿새 전 「뚜껑」에서 이미 한 번 다뤘던 바로 그 화재입니다. 그때는 불을 피해 달아난 사람 쪽에서 썼다면, 이번엔 전화를 받던 사람 쪽에서 다시 써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각에 여러 명의 접수요원이 나눠 받은 전화였는데, 이야기에서는 한 사람이 받은 것처럼 모았습니다. 대기 건수가 뜨는 화면,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버릇, 이명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같은 불인데도 전화선 반대편에서 보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게 마음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