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

도윤은 동물병원 간판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창은 깜깜했다. 벨을 두 번 눌렀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뒤로 아기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죄송해요, 주소를 잘못 적었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아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어서요.”

도윤은 배달통 뚜껑을 내려다봤다. 딸아이가 그려준 손바닥 그림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색연필 선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아이 옆에 계세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갈게요.” 그가 말했다. 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작게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배달 두 건을 마쳤다. 신규 배차 버튼을 껐다. 켜두면 들어왔을 콜들을 헤아리지 않기로 했다.

여자가 사는 빌라,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도윤은 벨을 한 번만, 짧게 눌렀다. 손끝에 닿은 쇠가 차가웠다. 문틈으로 여자가 아기를 안은 채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봉지를 건넸다.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도 고개를 숙이고 바로 돌아섰다.

추석 연휴 전날, 그는 그 집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엔 배달통 대신 손에 커피와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여자가 보내온 상품권에 자기 돈을 보태 산 것이었다. 벨을 누르자 아기 울음 대신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에 오른 그는 배달통 뚜껑을 한 번 더 쓸었다. 손바닥 그림은 그대로였다. 미등이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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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불 꺼진 병원 앞 당황한 배달기사…주소 잘못 적은 엄마 울린 “한마디” [따뜻했슈] — 파이낸셜뉴스, 2026.10.01 (사연 자체는 추석 연휴 전의 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한 줄 요약: 배달 주소를 동물병원으로 착각한 고객의 사정을 들은 배달기사가, 밀린 배달을 마치고 직접 아기 엄마를 찾아가 물건을 전해준 이야기.


작가의 말

실제로는 배달 주소를 동물병원으로 잘못 입력한 고객에게, 한 배달기사가 “아이 옆에 계시라.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곧 가겠다”는 말을 건네고 직접 물건을 가져다준 사연입니다. 기사 속 배달기사는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기사에는 두 사람 모두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윤이라는 이름과 손바닥 그림, 그 밖의 구체적인 장면과 대사는 전부 제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