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지연은 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연휴 마지막 밤이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보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는 한 달이었다. 상자는 여덟 개째 그대로 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손잡이를 따라 작은 손뜨개 조각들이 클립으로 걸려 있었다. 알록달록한 것들이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딸기 모양이 하나 있었다. 종이 한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에 이사 온 6학년입니다. 취미가 뜨개질이라 이웃분들께 나눠드리고 싶었어요. 1개씩만 가져가세요. 즐겁고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지연은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이 건물에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몇 개 안 남아 있었다. 손이 먼저 딸기를 집었다. 실 끝이 몇 번이고 다시 묶은 자국으로 뭉쳐 있었다. 잘못 맨 매듭을 풀고 또 풀고, 결국 다시 맨 손의 흔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그는 현관 열쇠에 그것을 끼웠다. 아직 낯선 열쇠였다. 문을 열 때마다 잠깐씩 방향을 헤맸다. 고리를 만지작거리다 지연은 생각했다. 이 건물에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모르는 채로도, 먼저 와본 적 없는 두 사람이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문을 열었다. 상자들은 그대로였다. 열쇠 끝에서 딸기가 흔들렸다.


비슷한 이야기: → 받는 사람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1개씩만 가져가세요”…새로 이사 온 초등생 선물에 이웃들 마음 녹았다 [따뜻했슈] — 파이낸셜뉴스, 2026.09.26

한 줄 요약: 얼마 전 이사 온 초등학생이 손뜨개 키링과 손편지를 엘리베이터에 걸어두고 이웃들에게 나눠준 이야기.


작가의 말

실제로는 얼마 전 이사 온 6학년 학생이 엘리베이터에 손뜨개 키링과 손편지를 걸어둔 것, 그리고 편지의 문구를 기사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봤습니다. 지연이라는 이름과 이혼·이사라는 사연, 딸기 모양과 다시 묶은 매듭의 흔적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이사 온 사람이 이사 온 아이의 선물을 받는다는 우연이, 서로 몰라도 마음은 가닿을 수 있다는 쪽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