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수는 새벽 다섯 시에 양봉장으로 나갔다. 추석을 열흘 앞둔 날이었다.
훈연기 연기를 두어 번 뿜어 벌을 가라앉히고 뚜껑을 하나씩 열었다. 벌들이 낮게 웅웅거렸다.
손등에 한 마리가 앉았다가 날아갔다. 이제는 안다. 화가 난 날갯소리와 그냥 궁금한 날갯소리는 다르다.
육 년 전 이맘때도 이 시간에 나왔다. 그해는 감귤꽃이 유난히 오래 피어 냉동고에 꿀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팔 데를 찾다 못해 제주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남는 게 좀 있어서요.” 그게 다였다.
이듬해 봄, 이번엔 시청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태수는 그제야 이게 한 해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올해는 장마가 길어 꿀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백쉰 병은 따로 뺐다.
마스킹테이프를 뜯어 병마다 채밀한 날짜를 적었다. 손끝에 힘을 줘도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아내가 “인쇄해서 붙이면 되잖아” 했다. 태수는 매번 손으로 썼다. 누군가 뚜껑을 열다 이 삐뚤한 글씨를 보면, 대충 만든 게 아니란 걸 알아줄 것 같아서였다.
전달식에서는 시장과 나란히 서서 웃었다. 사진이 찍혔다.
집에 돌아와서는 남은 병 중 색이 가장 옅은 것 하나를 골라 저녁상에 올렸다. 숟가락으로 뜨자 달다기보다 밍밍했다.
가장 맛없는 것부터 먹는 습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육 년째 그대로였다. 이름도 써넣지 않은 백쉰 개의 병이 어느 집 밥상에 오를 것이다. 태수는 그 밥상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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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제주허니양봉원, 450만원 상당 벌꿀 선뜻 — 제주매일, 2026-09-10
한 줄 요약: 제주의 한 양봉업자가 6년째 추석마다 벌꿀 150병(450만원 상당)을 제주시 취약계층에 기탁해왔다.
작가의 말
기사에는 “정성껏 준비했다”는 한 줄만 있었다. 그 정성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빈자리에 냉동고 가득 남았던 꿀과, 팔 데가 없어 걸었던 전화 한 통을 넣어보았다. 좋은 습관은 때로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남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남는 것을 육 년째 놓지 않는 것, 그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