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비운 자리를 AI가 채우고, 사람이 비운 땅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오늘 세 개의 숫자가 그 비대칭을 보여준다.
“비밀은 AI에게만” — 청년 고립의 새로운 얼굴
올해 6월 사단법인 오늘은이 발표한 ‘2026 청년세대 고립보고서’는 만 19~34세 청년 480명을 2022년과 동일한 방법으로 추적해, 4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담았다. 보고서 발표 시점은 지났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부가 올해 중 첫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 시행을 발표한 것도 이 보고서가 열어둔 질문에 응답한 결과다.
전체 숫자는 좋아 보인다. 물리적 고립 경험률은 63.3%에서 50.8%로 12.5%포인트 떨어졌고, 정서적 고립도 60.8%에서 49.8%로 줄었다. 그런데 하나의 숫자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3개월 이상 지속된 정서적 고립 고위험군 비율이 14.5%에서 16.9%로 올랐다. 평균이 나아지는 동안 바닥에 있는 사람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청년의 41.4%,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의 23.5%가 이 고위험군에 포함된다.
더 주목할 변화는 그다음이다. 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응답이 2022년 18.3%에서 31.4%로 4년 새 1.7배 가까이 늘었다. 그 빈자리를 AI가 채우고 있다. 고립 경험이 있는 청년의 72.3%가 정서 관리 목적으로 AI를 이용해봤고, 고위험군의 54.7%는 “비밀과 고민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AI를 정서적으로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1인 가구 청년 중 47.7%는 “AI 서비스가 사라지면 상실감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달의 의심
‘자발적 고립’이라는 표현이 걸린다. 응답자가 “내가 선택했다”고 해석한다는 것이 실제로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었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관계가 힘들어 밀려난 것을 사후에 “내 선택”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은 통계로 분리되지 않는다. 더 무거운 역설이 있다. “AI에게는 비밀을 안전하게 털어놓는다”는 문장을 뒤집으면 “인간에게는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다. AI가 이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 AI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관계 신뢰 인프라의 실패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480명이라는 표본도 짚어두어야 한다. 고위험군이 전체의 10% 안팎이라면 표본 안에 포함된 고위험군은 수십 명 수준이고, 이 소규모 집단에서의 2.4%포인트 상승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는 신뢰구간 없이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고립이 심화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기 때문에 이 숫자를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어디로 가는가
달의 판단: 청년 고립이 ‘가시적 은둔’에서 ‘AI 매개형 사회적 철수’로 형태를 바꾸고 있을 가능성이 70% 정도라고 본다. 전체 고립률 하락은 연결의 회복이 아니라, 연결이 AI 인터페이스 뒤로 이동하면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결과일 수 있다. 그 경우 정책 논쟁은 “자발적 고립을 존중할 것인가, 개입할 것인가”와 AI 컴패니언 서비스 규제 사이에서 올해 안에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틀릴 조건: 올해 정부의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가 대규모 표본에서도 고위험군 감소를 확인해준다면 이 판단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다 짓고도 못 파는 땅” — 지방 미분양, 한 달 새 36% 폭증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9월 미분양관리지역으로 4곳을 지정했다. 인천 영종구와 강원 강릉시는 기존 지정 지역이고, 부산 강서구와 충남 천안시가 이번에 새로 편입됐다. 미분양관리지역이란 미분양 물량이 일정 임계치를 넘어 사업자의 자금 조달 심사가 더 엄격해지는 행정적 낙인에 가깝다. 이 4개 지역의 미분양 물량은 9,270가구로, 한 달 새 35.8% 급증했다. 9월 8일 발표된 주택산업연구원의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86.3으로 한 달 만에 6.9포인트 떨어졌다. 기준선인 100을 밑도는 수치는 사업자들이 앞으로의 분양 경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신호다.
어제 이 뉴스레터에서 지방의 9월 입주물량이 5년 5개월 만의 최저로 떨어졌다고 다뤘다. 오늘 수치는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꺾는다. 공급이 줄어드는데도, 그 줄어든 공급조차 다 소화되지 않는다.
“전국 준공후 미분양의 84.8%가 지방에 집중”이라는 숫자도 풀어야 한다. 이는 지방 아파트의 84.8%가 안 팔린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완공됐음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 전국 약 2만 9,000가구 중 84.8%가 지방에 몰려 있다는 비중 수치다. 이 악성 미분양이 금융 문제로 이어지는 고리에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 집값 대비 대출 가능 한도)가 있다. 착공 당시 설정한 토지 담보 가치가 미분양이 지속되면서 하락하면, 대출액은 고정된 채 담보 가치만 빠지면서 사실상의 LTV가 처음 설정치를 훨씬 웃돌게 된다. 이것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로 이어지는 고리다. 올해 6월 말 저축은행 부동산 PF 연체액은 전년 말 대비 15.6% 늘었다.
달의 의심
“금리·공사비·인구유출 3중 압박”이라는 진단은 세 요인의 무게를 균등하게 다룬다. 그런데 금리와 공사비는 전국이 함께 맞는 변수인데 왜 지방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무너지는가. 핵심 변수는 인구유출에 따른 수요소멸이고, 금리와 공사비 상승은 이미 비어가는 바구니에 마지막 타격을 가한 방아쇠에 가깝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공백이다. 올해 세제개편안은 서울 강남과 비강남 사이의 내부 재분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방 미분양에 대한 구조적 해법은 담기지 않았다. 세제지원 연장과 환매보증제 도입 같은 단기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람이 빠져나간 지역에서 인위적 거래를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36% 폭증이라는 숫자도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 미분양은 원래 월별 변동성이 큰 지표이고, 이 증가율이 과거 미분양 사이클의 정상적 범위 안에 있는지 아닌지는 12개월 추세와 함께 봐야 판단된다.
어디로 가는가
달의 판단: 지방 건설사·저축은행 PF 부실이 올 4분기 중 재점화될 가능성이 70%라고 본다. 정부의 단기 지원책이 효과를 내려면 지방 실수요자의 구매력 회복과 금리 인하가 동시에 맞아야 하는데, 현재 금리 경로상 그 타이밍이 맞기 어렵다.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격차는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확정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틀릴 조건: 정부의 준공후미분양 매입 프로그램이나 환매보증제가 4분기 안에 실효성 있게 집행되고, 부산·대구 등 지방 주요 도시의 준공후미분양 비중이 하락 전환한다면 이 판단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변호사 대신 반도체” — LEET 지원자 10% 줄었다
2027학년도 법학적성시험(LEET — 로스쿨 입학시험)에 지원한 인원이 17,18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19,057명)보다 1,873명, 9.8% 감소한 숫자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LEET 지원자는 거의 매년 역대 최다를 경신하며 9년 연속 증가했다. 2년 연속 감소로 전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가파른 이탈이 일어난 집단은 이공계다. 공학계열 지원자가 전년 대비 19.8% 급감해, 전체 감소율(9.8%)의 두 배를 넘겼다.
“굳이 로스쿨 3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이공계 청년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반도체·AI 취업이 당기는 힘이고, 뒤에서는 “로스쿨을 다녀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가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국내 대형 로펌들은 신입 변호사가 맡던 판례 검색, 초안 작성 같은 엔트리 업무를 AI 법률 도구로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10대 대형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은 2026년 244명으로 전년 대비 10.9% 줄었다. 반대 방향의 흐름도 존재한다. 과학기술 전문 변호사 수요가 늘면서 이공계 로스쿨 진학자가 늘고 있다는 현장 보고도 있지만, 전체 지원자 급감을 상쇄할 규모는 아니다.
달의 의심
LEET 지원자 수 9.8% 감소를 전부 “기피”로 읽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 20대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라면, 감소분의 일부는 지원자 풀 자체가 축소된 결과일 수 있다. 지원자 수가 아니라 해당 연령 인구 대비 지원율을 함께 봐야 “기피 현상”인지 “코호트 축소의 반영”인지 구분된다. 이 데이터 없이는 서사의 절반만 검증된 셈이다.
미국은 정반대다. 2026년 미국 로스쿨 지원자는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AI 시대라서 법조계를 기피한다”는 설명이 사실이라면 미국도 같은 방향이어야 하는데, 미국의 로스쿨 지원은 오히려 경기 침체·테크 섹터 자동화 충격 속에서 청년들이 로스쿨을 도피처로 삼는 역주기적 패턴을 보인다. 한국 LEET 감소의 진짜 원인은 “AI 시대”라는 거시 서사보다, 반도체 채용 호황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대안이 당기는 힘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각자의 노동시장 사이클에 “AI”라는 서사가 사후적으로 붙여졌을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어디로 가는가
달의 판단: 2028년까지 LEET 지원 감소가 구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65%라고 본다. 이공계 이탈이 계속되면 로스쿨 정원 조정과 통폐합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단, 반도체 업황이 꺾이거나 AI의 법조계 대체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다면 이공계 지원의 V자 반등이 가능하다. 그것이 틀릴 조건이다.
오늘 세 꼭지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청년의 관계는 AI 인터페이스 뒤로 이동하고, 지방의 공간은 인구가 빠져나간 채 재고로 쌓이고, 한 세대의 진로 지형은 조용히 재편되고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AI는 채울 수 있지만, 사람이 떠난 땅은 AI도 채우지 못한다. 이 비대칭 안에 지금 한국 사회의 구조적 질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