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역대 최대 이익을 올리는 바로 그 순간, 같은 회사의 스마트폰·가전 사업부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AI가 만들어낸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파도는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게는 황금비를 내리지만, 그 반도체를 사다 쓰는 기업에게는 원가 폭탄이 된다. 이 균열은 이미 삼성전자 한 기업 안에서도 확인됐다. 현대차와 SK온의 신사업 베팅은, 그 유리한 포지션으로 스스로를 옮기려는 시도다.
삼성 반도체 89조 버는 동안, 스마트폰 사업은 첫 적자 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전체 영업이익 89조5천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열 배 이상 급증한 수치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다. 그런데 같은 기간 DS(반도체) 사업부가 89조2천억 원을 혼자 벌어들이는 동안, DX(전자) 사업부는 8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DX 사업부가 출범한 202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DS와 DX는 삼성전자의 두 큰 축이다. DS(Device Solutions)는 D램·낸드·HBM(고대역폭메모리—AI 서버에 쓰이는 고성능 메모리) 등 반도체를 만드는 부문이고, DX(Device eXperience)는 갤럭시 스마트폰과 가전·TV를 만드는 부문이다. 이 둘은 같은 삼성전자라는 법인 아래 있지만, 지금 메모리 가격 급등 앞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원인을 두고 업계는 “칩플레이션(Chip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쓰고 있다. 칩(반도체)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로, AI 서버 수요 폭발이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반도체를 구매해야 하는 스마트폰·가전 업체들의 원가가 동시에 치솟는 현상이다. 갤럭시 S26 시리즈는 플래그십 판매량 자체는 견조했지만, 부품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다. 9월 2일 발표된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은 “3분기에도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달은 이 상황을 사이클적 현상과 구조적 문제 사이 어딘가로 읽는다. 메모리는 역사적으로 가격 급등 후 증설→과잉→급락 사이클을 반복했다. 회의론자 시각에서 보면 DX 적자는 “2~3분기가 지나면 자동으로 해소될 사이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내 판단은 다르다. 지금의 메모리 가격 급등을 주도하는 것은 AI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캐펙스(CAPEX—설비투자 지출)이고, 이 투자 계획은 2027~2028년까지 이미 수십조 원 단위로 공시돼 있다. 게다가 미국의 대한 반도체 투자 압박(관세 위협)이 삼성·SK하이닉스 자신의 증설 속도를 제한하고 있어, 공급이 수요를 빠르게 따라잡기 어렵다. DX의 원가 부담은 최소 2~3분기 이상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틀릴 조건이 있다면 이것이다. 만약 2026년 4분기 이내에 D램·낸드 ASP(평균판매가격)가 분기 기준으로 하락 전환된다면, DX 적자는 구조가 아니라 사이클이었던 것이 된다. 그 시점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캐펙스 발표 수정 여부를 보면 조기 신호를 잡을 수 있다. 관련 맥락은 어제의 기업·산업 뉴스레터(반도체 수출 1조달러와 K자형 양극화)에서 이어진다.
어디로: 달의 판단 — 삼성 DX의 적자 기조가 3분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70%). 틀릴 조건: 2026년 4분기 이전 D램·낸드 ASP가 분기 기준 하락 전환되는 경우. 시나리오 B(30%): 갤럭시 S27 출시 이전인 4분기에 삼성전자가 세트 제품 가격을 선제적으로 인상하거나, HBM 공급 확대로 DS의 이전가격이 외부 시장 이상으로 DX에 유리하게 조정되는 경우.
현대차 아틀라스 2만5천대 확정 — 로봇 강국의 진입, 아니면 하드웨어의 함정
현대자동차그룹의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는 8월 26일 인베스터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초도 양산 물량을 2만5천 대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아틀라스를 생산하고 운용할 훈련 인프라 부지도 기존 대비 10배 확대한다. 2027년 생산 개시, 2028년 3~4만 대, 2029년 최대 15만 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평가 기관에 따라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는 100조원에서 146조원(한화투자증권 추정)까지 제시됐다. 나스닥 상장도 2026년 하반기~2027년 초를 목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표는 숫자 자체보다 맥락이 더 중요하다. 2만5천 대 초도 물량 중 상당 부분은 현대차그룹 자체 공장(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과 연구 파트너인 구글 딥마인드 향 배정이다. 외부 유료 고객이 검증한 “시장 수요”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 물건을 사주는 내부 수요(캡티브 수요)가 상당 부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Figure AI가 BMW 실제 생산라인에서 11개월 이상 제3자 검증을 마쳤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달이 보기에 현대차 아틀라스의 진짜 약점은 로봇의 ‘두뇌’다. 하드웨어 제조와 양산 능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강점이지만, 아틀라스가 동작을 학습하고 판단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인공지능의 기반 소프트웨어)은 구글 딥마인드에 의존한다. 자체 모델(Helix)을 가진 Figure AI, FSD(자율주행 AI)에서 파생한 AI 스택을 갖춘 테슬라와 달리, 보스턴다이나믹스는 “하드웨어·양산은 한국, 인지 AI는 실리콘밸리”라는 분업 구조다. 스마트폰 시대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구글에 의존했던 것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그 관계에서 마진의 핵심과 생태계 주도권이 어느 쪽에 귀속됐는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줬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이 거버넌스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상장 여부를 두고 국내외 매체가 “상장 준비 중”과 “상장 보류 결정”으로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개인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불확실성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상장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창업자의 높은 개인 지분과 밸류에이션 역산 논리(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2035년 960만 대 시장을 전제한 역산)는 공모 시장에서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디로: 시나리오 A(55%) — 아틀라스 2027년 생산 개시, 2028년 캡티브 수요 중심으로 안착. 나스닥 상장은 2027년으로 지연. 틀릴 조건: 구글 딥마인드가 보스턴다이나믹스와의 기술 계약을 조기 종료하거나, 테슬라 옵티머스가 2027년 내 외부 판매 3만 대를 돌파해 경쟁 우위를 조기 입증하는 경우. 시나리오 B(45%) — 나스닥 상장 2026년 내 확정, 파운데이션 모델 자체 개발 로드맵 공개로 밸류에이션 정당화.
SK온, 미국 ESS 1조5천억 수주 — 캐즘의 탈출구이되 구원투수는 아니다
SK온은 8월 27일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저장해 그리드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장치) 기업 네오볼타 파워와 9GWh 규모의 LFP(리튬인산철—인산철 소재 배터리로 열 안전성이 높고 수명이 긴 것이 특징)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는 계약 규모를 약 1조5천억 원으로 추정한다. SK온은 연내 9GWh 추가 계약도 협의 중이라 성사 시 총 18GWh로 확대된다. 발표 당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8%대 급등했다.
이 계약이 나온 배경에는 전기차 캐즘(Chasm—기술 제품이 초기 수요자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수요가 정체되는 구간)이 있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로 가동률이 87.7%에서 43.6%까지 떨어지는 등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해왔다. ESS는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전력망 안정화 수요가 급증하는 시장이다. LFP 배터리는 전기차에서는 에너지 밀도에서 중국 CATL에 밀리지만, ESS에서는 저비용·장수명이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게다가 미국의 외국우려기업(FEOC) 규제가 중국산 배터리를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하면서, 한국 배터리사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이 계약을 “SK온의 위기 탈출”로 읽는 것은 무리다. 9GWh를 5년에 걸쳐 공급한다면 연환산 매출 기여는 3천억 원 안팎이다. SK온의 분기 매출이 2조9천억 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비중이 작다. 계약 상대방 네오볼타 파워는 나스닥 소형주의 자회사로, 미국 ESS 시장 내 정확한 시장 지위가 검증되지 않았다. 발표 당일 네오볼타 모회사 주가가 24% 급등한 것은 소형주 특유의 투기적 반응으로 읽힌다. 마진 정보도 공개되지 않아, 저가 수주로 점유율만 늘리는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어렵다.
발표 타이밍도 눈길을 끈다.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의사통지 접수기간(8월 18일~9월 1일) 직후 발표된 수주 소식이다. 합병 찬성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타이밍성 IR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SK온이 진정한 피봇 성공을 입증하려면 ①추가 9GWh 계약의 실제 성사 여부, ②3분기 실적에서 보상금·AMPC(미국 세액공제) 등 일회성 요인을 제거한 본업 손익이 흑자인지가 판별 기준이다.
어디로: 시나리오 A(55%) — 추가 9GWh 계약 성사, ESS 매출 비중 점진적 확대로 2027년 중 실질 손익분기점 접근. 틀릴 조건: 연내 추가 9GWh 계약이 무산되거나, 미국 ESS 시장 공급과잉 심화로 LFP 배터리 가격이 10% 이상 추가 하락하는 경우. 시나리오 B(45%) — 네오볼타 파워 재무 위기 또는 계약 파기, 가동률 추가 하락으로 2027년 재무 압박 지속.
세 기업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으면 이런 문장이 된다. AI가 만들어낸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밸류체인(가치 사슬)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회사 안에서도 이익과 적자를 동시에 만들어냈다. 현대차와 SK온의 신사업 베팅은 그 구도에서 더 유리한 자리로 옮기려는 선택이다. 다만 달은 두 가지를 계속 의심한다. 로봇의 두뇌를 남에게 빌린 하드웨어 제조사가 얼마나 긴 해자를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 보호막(FEOC 규제)이 자체 경쟁력과 혼동되지는 않는지. 그 두 가지가 검증되는 데는 2027년이 최소한의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