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졌다. 이제 모든 결정은 힘의 언어로 번역된다.
① 미국-캐나다 관세전쟁 D-3 — “동맹도 예외 없다”는 증명
9월 8일 화요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국경을 사이에 둔 두 나라가 반세기 만에 가장 높은 관세 장벽 앞에 서게 됩니다. 캐나다의 보복관세 874개 품목이 발효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그 D-3입니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합니다. 8월 22일 토요일,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법 338조를 근거로 캐나다산 자동차·주류·유제품 등을 대상으로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338조는 1930년 제정 이후 96년 만에 처음 발동된 조항입니다. 왜 이 낯선 법 조항을 꺼냈는가. 올해 2월 20일, 연방대법원이 IEEPA(국제긴급경제권한법—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법)를 근거로 한 관세를 6대3으로 위헌으로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법적 근거가 무너지자 새 법 조항으로 갈아탄 것입니다.
그날 밤 협상이 결렬되자 카니 총리는 즉각 맞대응을 선언했습니다. “공격받으면 전쟁이다.” 캐나다가 선택한 보복은 미국 관세율을 품목별로 그대로 복제한 “달러 대 달러” 매칭 구조입니다. 874개 품목, 277억 캐나다달러(약 200억 미국달러) 규모, 세율은 15·25·50%로 미국 관세와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왜 한국 독자에게 중요한가. 미국과 캐나다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북미 3국 자유무역 협정)로 묶인 명목상 동맹입니다. 그럼에도 338조와 232조(무역확장법—국가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는 이 협정의 보호막을 무시하고 발동됐습니다. USTR(미국 무역대표부—대통령의 무역협상을 담당하는 행정기구)의 제이미슨 그리어는 “캐나다의 보복에 대응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조약 파트너도 예외가 없다는 것, 그리고 위헌 판결을 받은 관세 도구가 새 법 조항으로 무한히 교체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한미FTA를 체결한 한국도 이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만 달의 의심이 있습니다. 이 관계는 이미 한 번 극적으로 뒤집힌 전례가 있습니다. 2025년 캐나다 방송사가 과거 레이건 연설을 편집해 반트럼프 광고를 제작하자 트럼프는 협상을 대문자로 “HEREBY TERMINATED”(이로써 종료된다)라고 선언했다가, 온타리오의 광고 철회 이후 협상을 재개했습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내부에서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유권자를 등돌리게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트럼프에게 극적 봉합이 확전보다 정치적으로 더 유리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확전 지속, 60%): 미국이 캐나다 보복에 재맞대응하면서 전선이 자동차·에너지 섹터로 넓어집니다. USMCA 존속 자체에 의문이 생기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같은 패턴을 주시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B(협상 재개, 40%): 11월 중간선거 압박과 트럼프의 거래 본능이 맞물려, 9월 내 어느 시점에 “위대한 합의”를 선언하며 극적 봉합이 이뤄집니다. 레이건 사태 전례를 볼 때 단선적 확전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 60% — 9월 8일 발효 전 협상 재개의 공식 신호가 아직 없고, USTR이 보복 대응을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극적 봉합이 반복되는 패턴이므로, 중간선거 3개월 전 어느 시점에서의 반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틀릴 조건: 이번 주말 카니-트럼프 직접 통화 또는 USTR-캐나다 비공개 협상 재개 소식이 나오면 판단을 바꿉니다.
② 한·중앙아시아 첫 정상회의 (9/16~17) — 공급망 헤지의 격식
9월 16~17일, 서울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정상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오늘은 그 11일 전, 경호처가 “빈틈없는 경호 구축”을 선언하며 준비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 뒤에 있는 실제 질문은 하나입니다. 왜 지금인가. 트리거는 2025년 중국의 희토류(전기차·방산 부품에 필수적인 고성능 자석 원료) 수출통제 강화였습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지정학적 무기로 쓰기 시작하자, 한국은 카자흐스탄의 우라늄(세계 1위 생산국), 카스피해 에너지, 중앙아시아 크롬·티타늄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정상급 격상은 그 시선을 공식화하는 외교 언어입니다.
이 회의가 이재명 정부의 독자 외교 노선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미국과의 한미동맹은 유지하되, 중앙아시아라는 중국·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에 한국만의 경제 채널을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어제의 정치·지정학 섹션에서 다룬 이재명 정부의 다자외교 확대 흐름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달의 의심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명될 협정이나 투자 약정이 구체적으로 보도된 것이 없습니다. 의제가 “에너지·핵심광물·AI·문화교류”처럼 포괄적 수사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5개국 정상 전원 방한도 개별 확인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신북방정책, K-실크로드 협력구상처럼 과거 유사 이니셔티브의 실행률을 볼 때, 정상회의라는 형식의 격상이 곧 공급망 실질 변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실질 성과, 35%): 9월 16~17일 발표문에 카자흐스탄 우라늄 연간 도입량이나 희토류 합작개발 투자 약정이 구체적 수치와 함께 포함됩니다. 한국의 자원외교가 선언에서 실행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이 됩니다.
시나리오 B(상징 이벤트, 65%): 포괄적 협력 의사를 담은 공동선언과 MOU(양해각서—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양측이 협력 의사를 공식화하는 합의 문서) 서명에 그칩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지평 확대” 이력 하나가 쌓이지만, 공급망에 즉각적 변화는 없습니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B 65% — 중앙아시아와의 실질적 공급망 계약은 수십 년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사안이고, 이번 정상회의는 그 출발점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한 번 격상된 외교 궤도는 다음 정상회의에서 구체화될 여지를 만들어줍니다. 틀릴 조건: 9월 16~17일 발표문에 구속력 있는 수치가 포함되면 판단을 바꿉니다.
③ 북한 “핵보유국 지위 불가역” — 비핵화가 아니라 군축의 시대로
올해 하반기,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처음으로 “핵군축 가능성”을 공식 의제로 꺼냈습니다. 비핵화(핵을 없애라)가 아닌 핵군축(핵을 가진 채 줄이자). 이 단어 하나가 바꾸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먼저 수치입니다. 미주중앙일보 추정(2025년 5월)으로는 실제 조립·보유 핵탄두 약 50개, SIPRI(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핵무기를 독립적으로 집계하는 국제 연구기관) 최신 기준으로는 약 60기, 핵물질은 최대 90발분입니다. 수치가 제각각인 이유는 북한이 핵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인데, 방향이 중요합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올해 3월 강선과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지속을 확인했고, 미국 DIA(국방정보국—미국 군사정보를 총괄하는 기관)는 4월 영변에 추가 농축 시설이 건설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두 기관이 독립적으로 교차 검증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에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은이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선언한 한 단어입니다. “불가역(irreversible).” 핵보유국 지위가 되돌릴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바꾸는 것은 협상의 출발점입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모든 협상 구도는 이 선언 앞에서 해체됩니다. 앞으로 어떤 대화든 “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핵을 가진 채로 위험을 줄이는” 군축 프레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현실이 공개적으로 선언된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구분: 8월 20일 무더기 발사 이후 오늘 기준 16일째 신규 군사 시험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재료는 새로운 시험 데이터가 아니라, 기존에 축적된 역량과 선언의 재확인입니다. “고도화가 가속되고 있다”와 “고도화된 역량이 이미 존재한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달의 의심도 있습니다. 러-북 밀착이 심화된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북한의 독자 역량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외부 자금·기술 지원이 절실하지 않을 만큼 강한 핵보유국이라면 러시아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불가역” 선언은 군사 역량 발표인 동시에 국내 결속을 위한 정치적 수사이기도 합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교착 심화, 70%):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 언어를 유지하고, 북한이 “불가역화”를 주장하면서 협상 채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2027년 이후까지 이어집니다. 이 구간에서 북한은 핵능력을 계속 축적하지만, 러시아·중국 지원 덕분에 제재 완화 필요성이 낮아 협상 복귀 유인도 낮습니다.
시나리오 B(역설적 대화 재개, 30%): 미국이 공식 외교 언어를 “비핵화”에서 “리스크 관리” 또는 “군축”으로 바꾸거나, 북-미 간 비공식 채널이 물밑에서 재가동됩니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행정부의 전략 재조정이 이 시나리오를 여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 70% — 미국 국무부의 공식 언어가 아직 CVID에서 벗어나는 신호가 없고, 북한도 협상 복귀 의사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핵화 대신 군축”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한국 연구기관들의 움직임이 미국 정책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데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입니다. 틀릴 조건: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완전한 비핵화” 표현이 빠지거나, 북-미 비공식 접촉이 공개됩니다.
오늘 세 꼭지를 하나로 꿰면: 단일 행위자가 통제하는 결정(미국의 338조 관세 발동, 북한의 핵독트린 선언, 한국의 정상회의 주최)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미-캐나다 협상, 북-미 대화, 정상회의 실질 성과)은 모두 불확실합니다. 세계가 단극의 규칙에서 다극의 힘으로 이동하는 시대, 결정은 빨라지고 합의는 느려집니다. 그 간극에서 살아남는 것이 오늘의 외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