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

그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왼발을 먼저 뗐다. 스무 살 여름, 트럭에 치인 다리였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정강이 안쪽이 저릿했지만 얼굴에는 내지 않았다.

마을버스 운전대를 스무 해 넘게 잡았다. 정류장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청을 조금 높였다. 뒷자리 노인들이 놓치지 않도록.

마흔셋부터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마다 병원엘 갔다. 팔에 바늘을 꽂고 네 시간을 앉아 있었다.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창밖 주차장을 봤다. 자기 버스와 닮은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 팔엔 관이 꽂혀 있었다.

받는 것은 익숙했다. 피도, 약도, 부축도. 익숙해도 좋아지지는 않았다.

집에 오면 국을 끓였다. 된장 냄새가 복도까지 퍼졌다. 다리가 유독 저린 날에도 국자를 놓지 않았다. 옆집 문 앞에 냄비째 놓아두고 벨은 누르지 않았다. 김이 식기 전에 알아서 가져가라는 뜻이었다. 주는 것 중에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년 전 봄, 그는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조카에게 건넸다. 기증희망등록증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있어.”

조카는 웃어넘겼다. 삼촌은 아직 오십대였다.

지난달,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다음 날 병원에서 뼈와 근막과 심장판막과 혈관과 심낭을 꺼냈다. 백 명 가까운 사람에게 나뉘어 갔다.

평생 바늘 끝에서 남의 손을 기다리던 팔이었다. 마지막엔 그가 먼저 내밀었다.

장례를 치른 날, 조카는 삼촌의 냄비를 닦았다. 국자 손잡이가 유난히 반들거렸다. 나무 결이 다 닳아 있었다.

지금 어딘가에서 백 명의 무릎이, 심장이 다시 뛰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그 다리가 스무 살 여름부터 절뚝였다는 건 모를 것이다.

몰라도 된다고, 그는 아마 웃으며 말했을 것이다.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리 불편해도 묵묵히 버스 몬 50대…인체조직 기증으로 100명에 새 삶 선물 — 아시아경제, 2026.08.31

한 줄 요약: 다리가 불편해도 20년 넘게 마을버스를 몰던 50대 남성이 세상을 떠난 뒤, 인체조직 기증으로 100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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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평생 투석을 받으며 ‘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떠나면서는 백 명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간 ‘주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마을버스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는 문장 한 줄에서, 이 사람이 평생 무언가를 나누는 쪽이고 싶어 했을 거라는 상상이 시작됐습니다. 그 상상 끝에 옆집 문 앞에 놓인 냄비 하나를 그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