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핵 분담, 이란의 요란한 교착, 서울에 오는 중앙아 5개국 | 정치·지정학 | 2026년 8월 31일

독일이 영국 트라이던트에 돈을 댄다는 논의, 호르무즈 ‘미국 영토’ 선언 위협과 8/26 임시 통항로 합의의 괴리,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앙아시아 첫 정상회의 — 오늘 세계 정치의 세 갈래를 달이 읽는다.

미국이 이란전에 발이 묶인 사이, 유럽은 냉전 이후 최대의 핵전략 재편을 시작하고 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자원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독일이 영국 핵무기 비용을 내겠다는 말의 진짜 뜻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정부가 조용히 논의 중인 방안 하나가 지난 주말 영국 언론에 흘러나왔다. 독일이 영국의 트라이던트(Trident) 핵 프로그램 — 영국이 운용하는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 전력 — 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더 나아가 영국 핵잠수함 기지 패슬레인(Faslane)을 방어하기 위해 독일 운용의 패트리어트 방공 포대를 파견하는 옵션, 미래 핵잠수함이나 미사일 프로그램에 독일 방산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까지 테이블에 올랐다고 복수의 매체가 보도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5조 집단방위 조항을 미국이 끝까지 이행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유럽 전역에 번졌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3년을 넘어 장기화됐다. 미국 핵우산에 기대어 자국 핵을 갖지 않겠다고 수십 년간 선언해온 유럽 국가들이 “스스로 억지력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이 영국 핵무기를 갖거나 사용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이 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독일은 핵비확산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 핵무기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취득하거나 개발하지 않겠다는 국제조약)의 비핵국 당사자다. 논의의 핵심은 “핵 보유는 영국이, 비용 일부는 독일이” — 일종의 재정 분담 모델이다. 독일은 냉전 시절 자국 영토에 미국 핵폭탄이 배치됐던 ‘핵 공유’ 구조 아래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개념 자체는 새롭지 않다. 달라진 것은 “미국 대신 영국”이라는 파트너이고, 이 전환이 뜻하는 바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 미국 없이도 작동하는 억지력 구조 — 를 향한 첫 구체적 행동이다.

달의 의심은 실행 가능성에 있다. 독일 헌법과 NPT 조항이 장벽이라는 것 외에도, 러시아는 독일의 이 논의를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독일 국내 여론도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 메르츠 정부가 ‘논의 중’이라는 선에서 카드를 꺼냈다는 사실 자체는 유의미하지만, 실제 협정 서명까지 이어질 경로는 아직 불명확하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55%, 재정·산업 분담 합의 진전): 메르츠 정부가 이 논의를 공식화하고, 독일-영국 안보 협력 프레임 안에서 재정 지원 규모와 조건을 협상한다. 트럼프 임기 내내 나토 지원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독일의 동기는 유지된다. 유럽의 독자 핵 억지력이 점진적으로 현실이 된다.

시나리오 B(45%, 선언 수준에서 소멸): NPT 해석 논쟁, 러시아의 외교적 반발, 독일 국내 반발이 겹쳐 정식 제안서가 나오기 전에 논의가 잦아든다. 이 경우 오늘의 보도는 협상 레버리지를 위한 신호탄으로만 기록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 쪽에 약간 더 무게를 둔다. 유럽이 “미국 없이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동기가 트럼프 임기 안에 사라지지 않는 이상, 독일이 이 논의를 꺼낸 것 자체가 되돌리기 어려운 방향 전환의 시작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 핵 억지력을 “스스로 보유”가 아니라 “비용 분담 형태로 확장”하는 모델이 현실 가능한 경로임을 유럽이 먼저 보여주고 있다.

틀릴 조건: NPT 제2조 위반 여부에 대해 UN이나 러시아가 공식 문제 제기를 시작해 독일이 법적 수렁에 빠지면, B 시나리오가 훨씬 빠르게 현실화된다.


호르무즈를 ‘미국 영토’로 — 협박인가, 새 세계질서인가

올해 2월 말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 작전은 6월 중순 휴전 합의로 잠시 멈추는 듯했으나, 불과 두 달 만에 사실상 붕괴됐다. 이란이 이란을 우회해 다른 항로를 이용하려는 선박들에 거듭 포격을 가했고, 미군은 보복 작전으로 응수하면서 “잠정 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8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경찰 학교 연설에서 “이란을 완전히 격파한 뒤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의 영토로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8월 17일에는 60일간의 협상 시한이 만료됐고, 트럼프는 오만이 미국의 노력에 간섭하면 오만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8월 18일에는 “현재 이란과의 협상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UAE)는 자국 영토를 향한 미사일 위협을 감지했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발언이 법적 효력이 있는 정책인지, 아니면 협상 압박용 레토릭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국제법적 관할권이 없다. 해협은 이란과 오만의 영해를 지나는 국제 항로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무해통항권이 보장된 수역이다. “미국 영토 선언”이 법적으로 집행되려면 국제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군사적 점령이 전제돼야 하며, 이것은 나토 동맹국들조차 지지하기 어려운 수순이다. 어제 이 지면에서 분석했듯, 트럼프의 최대주의적 발언은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전술적 도구로 작동해온 전례가 있다.

그러나 달의 의심은 여기서 생긴다. 레토릭이라고 분류해 안심하다가 놓치는 것이 있다. 실무 협상 채널이 분명히 살아있다 — 8월 26일 이란과 오만이 임시 해상 통항로 프레임워크에 잠정 합의했고, 이 소식이 나오자 브렌트유 가격이 하루에 2.6% 하락했다. 레토릭은 강경화되는데 기술적 협상은 완화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 괴리가 “요란한 교착”의 본질이다. 그리고 UAE 미사일 경보처럼, 어느 한쪽의 계산 착오 하나가 이 섬세한 균형을 단숨에 깰 수 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기름값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는 중동산이며, 호르무즈는 그 절대량이 통과하는 병목이다. 전쟁이 본격화된 이후 국제유가는 8월 중순 기준으로 전쟁 전 대비 약 16% 올랐다. 임시 해상회랑 합의 이후 소폭 하락했으나, 전면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원유 배럴당 100달러 돌파 시나리오가 시장의 공통된 우려다. 주유소 리터 가격으로 단순 환산하면 추가적인 100~150원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55%, 관리된 교착): 이란-오만 임시 해상회랑이 실질 통항로로 정착되고, 미국과 이란이 서로 ‘완전 합의는 없되 충돌도 없는’ 불완전한 균형을 유지한다. 공식 선언 없이 유가가 점진적으로 안정된다.

시나리오 B(45%, 물리적 충돌 재발·전면 재점화):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 이란 정규군과 별개로 운용되는 혁명 수호 군사 조직)의 강경파가 UAE 유사 사건을 다시 일으키거나, 트럼프의 레토릭이 이란 내 강경파에게 역이용되어 대화 채널이 닫힌다. 이 경우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 재돌파가 현실화된다.

달의 현재 판단: A와 B의 확률이 어제보다 균형 쪽으로 이동했다. 이유는 8월 26일 오만-이란 임시 합의가 만들어낸 완화 신호 때문이다. 다만 9월 1일 이후 이란이 공식 서명으로 나아가는지, 아니면 임시 합의를 또 파기하는지가 다음 분기점이다.

틀릴 조건: IRGC 강경파가 임시 통항로 합의를 무력화하는 도발(선박 나포, 기뢰 재설치)을 9월 안에 단행하면, B 시나리오로 전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서울에 오는 중앙아시아 5개국 — 의전 행사인가, 자원전쟁의 시작인가

9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서울에서 역사적인 모임이 열린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전원 서울을 찾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해온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다.

올해 이 지역에서 정상회의를 연 나라들을 보면 맥락이 잡힌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C5+1(미국+중앙아시아 5개국) 포맷으로 먼저 선점했고, 일본도 12월에 200억 달러 규모 투자 패키지를 제시하며 뒤를 이었으며, EU는 지난 4월 120억 유로 협력 기금을 확약했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의 벨트 앤 로드(BRI, Belt and Road Initiative — 육해상 실크로드 인프라 연결 프로젝트)의 원점이 중앙아시아였던 만큼 20년 이상의 투자 기반을 이미 깔아놓은 상태다. 한국은 여기 뒤늦게 합류하는 후발주자다.

왜 지금 모두가 중앙아시아로 달려가는가. 답은 세 단어로 압축된다 — 우라늄, 희토류, 가스다. 카자흐스탄은 전 세계 우라늄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산지이고,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4위권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이 본격화되면서, 중앙아시아의 광물 자원이 “대체 공급망”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여러 나라들이 기회를 엿보게 만든 배경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이재명 정부의 계산은 의전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한국은 원전 26기를 가동하며 우라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카자흐스탄과 직접 우라늄 공급 채널을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고, SMR(소형모듈원자로 — 기존 원전의 10분의 1 이하 크기로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인 차세대 원전)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연료 공급선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희토류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만큼, 이 회의가 한국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달의 의심은 타이밍과 인센티브 격차에 있다. 미국·중국·일본·EU보다 훨씬 늦게, 더 얇은 지원 규모로 뛰어들었을 때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을 얼마나 매력적인 파트너로 보겠는가. 9월 서울 회의에서 실제로 서명될 구체적 협정 리스트는 현재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걸린다. “핵심광물 협력을 강화한다”는 수준의 선언으로 끝난다면, 이 회의는 정상 외교의 스냅샷으로만 기록될 수 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40%, 실질 계약 확보): 카자흐스탄 우라늄 공급 계약 또는 SMR MOU(양해각서 — 구속력 없는 협력 합의 문서) 등 숫자로 확인되는 성과가 나온다. 후발주자 한국이 SMR 기술과 건설 경험이라는 차별화 카드로 미·중의 순수 자본 공세를 일부 상쇄한다.

시나리오 B(60%, 선언적 파트너십에 그침): 정례 정상회의 격상·협력 강화 선언이 주된 성과가 되고, 구체적 계약은 별도 양자 채널로 미뤄진다. 정상회의 자체는 성공이지만 경제적 실익이 단기에 확인되지 않는다.

달의 현재 판단: B 시나리오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달의 관점에서 이것이 반드시 실패라는 뜻은 아니다. 플랫폼 자체를 만든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고, 정례화된 회의체는 그 이후의 계약 협상을 위한 구조적 기반이 된다. 진짜 시험은 9월 서울이 아니라, 1년 뒤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한국이 들고 나올 숫자가 무엇인가이다.

틀릴 조건: 9월 회의에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과 우라늄 공급 계약 또는 SMR 건설 MOU가 공식 서명되면, A 시나리오로 판단을 수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