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임은 안내문을 세 번 읽었다. 정읍 이평면, 증조부 이름을 적는 칸 앞에서 손이 멈췄다.
할머니는 그 이름을 딱 한 번 알려줬다. 순임이 열두 살 때, 마당 감나무 밑에서였다. “동학 하다 끌려가신 분이여. 함부로 말하면 못써.” 그 뒤로는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족보에는 한자로 석 자가 적혀 있었는데, 할머니가 불러준 음과는 조금 달랐다.
132년. 순임은 안내문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자녀도 손자녀도 아닌, 증손녀. 그게 자신이라는 걸 실감하는 데 한참 걸렸다.
아들은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 인터넷에 말이 많다더라, 괜히 이름만 오르내린다더라. 순임은 대꾸하지 않고 안내문을 접어 서랍에 넣었다.
어릴 적 저녁이면 할머니는 대문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어뒀다. 삐걱, 늘 같은 소리가 났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마당까지 번졌다. 순임도 시집간 뒤로 마흔 해 넘게 그 버릇을 따라 했다. 누구를 위한 문인지도 모르면서.
사흘 뒤, 순임은 서랍에서 안내문을 다시 꺼냈다. 신청서 칸은 비어 있었다. 족보의 한자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음이 다르면 어떤가. 이름이 서류에 오르는 건 132년 만에 처음이었다.
봉투를 붙이고 나서야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을 밀어 닫았다. 삐걱, 오늘은 그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전북,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 723명에 연 120만원 수당 지급 — 경기신문, 2026-08-25
한 줄 요약: 전북도가 132년 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 723명에게 연 120만원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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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뉴스는 수당 액수와 형평성 논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저는 다른 것이 궁금했습니다. 132년 동안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이름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의 빈칸을 채우는 순간. 그 앞에 선 사람의 손이 어떻게 멈췄을지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돈보다 오래된 감정이 거기 있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