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주일에 엿새,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왔다. 쉬는 날은 일요일 하나였다.
인천 함박마을, 그가 운영하는 인력사무소 문 앞엔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챙겨 온 증조부의 얼굴이었다. 직원도 손님도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다들 오래된 장식인 줄 알았다. 사무실 안에는 늘 믹스커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팔월, 서울의 한 기념관에서 그는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았다. 사회자가 증조부의 이름을 불렀다. 최재형. 러시아 한인 사회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항일 운동가라고 했다. 그는 박수 소리 속에서 아들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돌을 갓 넘긴 아이가 낯선 박수 소리에 울음을 터뜨렸다.
기자가 소감을 물었다. 그는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자신은 아들과 놀아 줄 시간조차 넉넉히 못 낸다는 것.
그날 밤, 그는 문구점에 들러 액자 하나를 사 왔다. 낡은 사진을 끼우고 사무실 문 옆에 못을 박았다. 망치 소리가 빈 사무실에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인력을 구하러 온 손님이 지나가다 물었다. “이분 누구세요?” 그는 처음으로 대답했다. “저희 가족이요.”
그날 저녁, 문을 잠그기 전 그는 액자를 다시 보았다. 조금 기울어 있었다. 그는 바로잡지 않고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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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천에 뿌리내린 최재형 선생 4대손, 대한민국 국민 됐다 — 경인일보, 2026-08-13
한 줄 요약: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4대손이 10년째 인천에서 일하며 살다, 광복 81주년에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았다.
작가의 말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소개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는 한마디가 먼저 눈에 걸렸다. 할아버지의 희생과 자신의 노동은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없는 무게인데도, 이 사람은 그 둘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었다. 국적증서 한 장이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은 여전히 증명하지 못하는지 — 그 사이의 자리를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