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계절

새벽 네 시, 김씨는 목장갑을 바꿔 꼈다. 여름엔 흰 장갑, 겨울엔 검정, 가을엔 갈색, 봄엔 연두색. 스무 해 넘게, 손이 먼저 계절을 알았다.

골목은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었다. 빗자루 끝에 술병이 걸리고, 담뱃재가 쓸려 나갔다. 여름 밤엔 유난히 냄새가 독했다. 밤새 썩은 것들이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의 몫으로 쌓였다.

“좋아하는 계절이 없네요.” 며칠 전 인터뷰 온 사람에게 그렇게 답했다. 봄엔 꽃잎, 여름엔 폭염, 가을엔 낙엽, 겨울엔 눈. 계절은 매번 다른 이름의 노동으로 그에게 왔다.

전립선이 나빠진 뒤로 물을 아껴 마셨다. 화장실 먼 골목이 있었다. 국밥집 앞을 지날 때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냄새가 옷에 뱄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날 새벽, 낯선 남자가 빗자루를 들고 옆에 섰다. 구청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 집 앞에서 김씨가 말렸다. “거긴 사유지라 안 쓸어도 됩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계속 쓸었다. “민원이 땅 경계를 가려서 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을 김씨는 오래 곱씹었다. 이십 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해가 뜨기 전, 골목은 다시 말끔해졌다. 남자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김씨는 남은 낙엽 한 장을 마저 쓸었다. 아직 가을이 아닌데, 어디서 날아온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좋아하는 계절이 없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좋아하는 시간은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에, 자기 발자국이 처음으로 찍히는 이 새벽. 그 새벽엔, 어떤 색 장갑을 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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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좋아하는 계절 없어요”… 환경미화원이 말하는 사계절의 고단함 — 오마이뉴스, 2026-08-14

한 줄 요약: 서울 성동구에서 새벽마다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의 쓰레기와 씨름하며 겪는 육체적 고단함과 사회적 무관심을 담은 르포입니다.


작가의 말

새벽 거리를 쓸며 계절을 몸으로 먼저 아는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계절이 없다”는 그 말이 슬프게 들리지 않아서 오래 남았다. 담담해서 더 그랬다. 계절은 골라 가질 수 없어도,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의 첫 발자국만큼은 온전히 그의 것이길 바라며 이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