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종배는 서울역 뒷골목을 걸었다.
왼쪽 걸음마다 소리가 났다. 딱, 딱. 의족이 보도블록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여섯 시 정각, 문이 열렸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세면대로 갔다. 바짓단을 걷고 의족을 풀었다. 눌린 자리를 물로 씻고 수건으로 눌러 닦았다. 여름엔 하루만 걸러도 짓무른다. 의사가 그렇게 일러줬다.
씻고 나면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탔다. 늘 앉는 자리에 늘 앉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제 날씨 얘기, 어디서 밥을 준다는 얘기. 특별한 대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침마다 그 자리가 있었다.
다른 시설도 있긴 했다. 거긴 서류를 쓰라고 했다. 이름도 물었다. 종배는 그냥 여기가 편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창가 자리가 있었다. 여섯 시 이십 분이면 그 자리에만 볕이 들었다. 딱 십 분. 종배는 그 십 분 동안 의족 안쪽을 창턱에 올려 말렸다. 몇 해째 하던 일이었다.
오늘 아침, 목사님이 벽에 종이를 붙였다. 시월에 부천으로 옮긴다고 했다. 월세가 감당 못 할 만큼 올랐다고 했다.
옆자리 노인이 혼잣말을 했다. “거기 가면 또 새로 사귀어야겠네.” 종배는 웃었다. 슬프다기보다 귀찮았다.
창턱에 손을 얹었다. 볕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십 분, 어제와 같았다.
부천의 창은 어느 쪽으로 나 있을까. 종배는 그것부터 궁금해졌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살인 폭염’ 부채질로 버티는 서울역 노숙인들…’마지막 쉼터’도 떠난다 — 뉴시스, 2026.07.30
한 줄 요약: 서울역 노숙인들의 15년 쉼터 ‘드림씨티’가 치솟은 임대료(월 580만 원→1000만 원)를 감당하지 못해 10월 말 경기 부천으로 떠난다.
비슷한 이야기: → 혼자 받은 경보
작가의 말
의족을 낀 이에게 여름은 남들과 다른 계절이라는 문장 하나가 오래 붙잡았다. 씻고 말리는 사소한 동작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동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 운영자인 목사님이 말한 “외로운 사람들끼리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말도 함께 남았다. 사라지는 건 4층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오갔던 사소한 습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