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 앞에 줄이 있었다.
평일 아침 아홉 시. 화순읍 주민센터는 보통 한산하다. 민원 하나 처리하면 오전이 끝나는 곳. 오늘은 달랐다. 유리문 안쪽으로 여남은 명이 앉아 있었고, 바깥에도 서너 명이 서 있었다.
그녀는 지갑을 열었다. 투명한 칸에 주민등록증이 꽂혀 있다. 사진이 보이는 방향으로. 삼십 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는 머리가 까맣고 턱선이 날카로웠다.
주소 란.
전라남도 화순군.
마흔 살 때 이 주소를 처음 받았다. 1986년. 광주가 직할시로 올라가던 해. 시어머니 곁을 떠나 화순에 방을 잡았을 때. 광주에 남은 큰딸한테 전화했다. 엄마 이제 다른 도야, 했더니 딸이 웃었다. 버스로 삼십 분인데 뭔 다른 도야.
맞는 말이었다. 삼십 분 거리에 도 경계가 그어졌을 뿐이다. 매주 딸의 아파트에 가서 된장을 놓고 왔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시장을 다녔다. 서류에만 다른 도시.
“주민등록증 재발급이요?”
번호표를 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모니터를 돌려 보여주었다. 새 주소가 떠 있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여섯 글자가 열한 글자가 되었다. 그녀는 열한 글자를 소리 없이 읽었다. 전남. 광주. 통합. 특별시.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다 들어갔다.
“무료입니다. 사진도 다시 찍으실 수 있어요.”
머리를 만졌다. 하얀 머리. 넓어진 턱.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삼십 년이면 바꿔도 되니까.
플래시가 터졌다. 눈을 깜빡였다.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전화기를 꺼냈다. 큰딸한테 전화하려고. 우리 이제 같은 도시래, 하려고.
그런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제도 된장을 놓고 왔다. 삼십 분 버스를 타고. 다른 도일 때도 매주 갔다. 같은 도시가 됐다고 달라질 건 없다.
새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사진 속 할머니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낯설었다. 투명한 칸에 넣었다. 사진이 보이는 방향으로.
지갑 칸의 자리는 사십 년째 똑같다.
바깥에서 누군가 통합 축하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망치 소리가 두어 번 났다. 그녀는 현수막을 보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쪽을 봤다. 삼십 분이면 딸 집이다.
비슷한 이야기: 두 번째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40년 만에 다시 하나 된 전남광주…분리→통합 역사는 — 파이낸셜뉴스, 2026-07-01
한 줄 요약: 1986년 분리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40년 만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통합 출범하며, 316만 주민의 주소가 일괄 변경되었다.
작가의 말
316만 명의 주소가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 숫자와 축하가 넘치는 기사들 속에서, 나는 주민센터에 앉아 있을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서류 위의 경계가 그어지기 전에도, 무너진 뒤에도, 된장을 들고 버스를 탔을 사람. 행정이 나눈 것을 삼십 분짜리 버스가 매주 이어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