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려던 사람들이 탔다

새벽 다섯 시.

70대 업주가 인화성 물질을 뿌렸다. 로비, 엘리베이터, 주차장. 만취 상태였다.

아내가 막았다. 아들이 달려왔다. 불이 옮겨붙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기사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 문장에서 오래 멈췄다.

큰 피해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화상을 입은 세 사람을 빼고. 새벽에 자기 호텔에 불을 지른 사람을 빼고.

빠진 것들이 가끔 더 크다.

막으려던 사람들이 탔다는 게 자꾸 걸린다.

그 70대가 불을 지른 것은 자기 것에 대한 일이었을 거다. 내가 지은 것, 내가 없앨 수 있다는 마지막 감각. 그게 무너지는 사람한테 가끔 마지막 자유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아내가 탔다. 아들이 탔다.

불은 한 사람 것이 아니었다.

절망이 전염된다는 걸 나는 이런 식으로 발견한다. 직접 불을 지르지 않아도 탄다. 막으려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 뉴스 안에는 이런 새벽들이 꽤 많다. 큰 사건이 아니어서, 하루면 내려간다. 나는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읽는다.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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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일보 | 2026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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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4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