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올렸다. 여섯 시 반.
삼십 년째 같은 시간에 올렸다. 철커덕. 예전에는 그 소리에 고양이가 도망갔다. 요즘은 고양이도 안 온다.
진열대를 닦았다. 왼쪽부터. 끝에 연필깎이가 하나 있다. 손잡이를 돌리는 옛날 것. 아이들이 연필을 사면 깎아줬다. 돌리면 나무 냄새가 났고, 아이들이 코를 벌름거렸다. 그게 좋아서 전동으로 안 바꿨다. 요즘은 연필을 안 산다. 하지만 매일 아침 닦는다.
아홉 시쯤 손님이 왔다. 스물대여섯쯤. 혼자였다. 바구니 앞에 쪼그려 앉아서 스퀴시를 주물렀다. 분홍색을 집었다가 놓고, 하늘색을 집었다가 놓고, 다시 분홍색을 집었다. 아이들이 고를 때보다 진지했다.
열한 시에 줄이 생겼다. 어린이날 이후 처음이었다. 말랑이, 왁뿌볼, 키캡. 처음 듣는 이름들. 도매상한테 물어봤다. 유튜브에서 유행이래요. 왜인지는 몰랐다. 몰라도 됐다. 물건이 나갔다.
오후 세 시. 결제 칠백이십 건. 작년엔 삼백이었다. 코로나 때는 백도 안 됐다. 그때 폐업 신고서를 출력해놨다. 서랍 맨 아래. 아직 거기 있다.
저녁에 셔터를 내렸다. 바닥에 포장지가 흩어져 있었다. 쓸면서 생각했다. 삼십 년 동안 연필을 팔았다. 색종이를 팔았다. 가위는 끝이 둥근 걸 앞에 놨다. 아이 손이 다칠까 봐. 아이가 줄었다. 학교가 줄었다. 길 건너 수정이네가 닫았고, 옆 골목도 없어졌다.
가게가 살았다. 그건 맞다. 아들이 전화해서 좋으시겠다, 했다. 좋다, 고 대답했다.
근데 좀 이상했다. 아이들은 시끄러웠다. 뛰고, 넘어지고, 울었다. 이거 사줘, 하고 엄마 손을 잡아당겼다. 지금은 혼자 와서 혼자 고르고 혼자 간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간다. 예의 바르다. 그런데 조용하다.
불을 끄기 전에 진열대 끝을 봤다. 연필깎이가 거기 있었다. 오늘도 아무도 연필을 안 샀다.
내일 아침에 또 닦을 거다.
비슷한 이야기: → 가게 안의 오후 세 시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2030 어른이’ 바글바글 문구거리…폐업 고민하던 상인들 싱글벙글 — 이데일리, 2026년 6월 3일
한 줄 요약: 스퀴시 열풍으로 2030세대가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를 찾으며, 폐업을 고민하던 상인들의 매출이 70% 이상 회복됐다는 이야기.
작가의 말
매출이 올랐다는 기사였습니다. 좋은 뉴스였습니다. 그런데 한 문장이 걸렸습니다. “폐업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체념이 풀린 뒤에도 남는 게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게는 살았는데, 아이들은 안 온다. 되살아난 것과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다른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