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장갑을 벗었다.

왼쪽만 먼저 닳는다. 첫 해에 알았다. 암벽을 잡을 때 왼손이 먼저 간다. 오른손은 미는 쪽이고, 왼손은 잡는 쪽이다. 장갑을 한 켤레 사면 왼쪽만 두 번 바꿔야 한다. 그는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후 두 시. 울산바위 북쪽 사면. 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는 초소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면이 아직 딱딱했다. 젓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드론이 먼저 올라갔다. 화면에 세 사람이 보였다. 두 명은 바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 명은 빨간 등산복을 입고 암벽에 엎드려 있었다. 로프가 없었다. 동행자 사고로 줄이 함께 떨어졌다는 무전이 왔다.

그는 장갑을 꼈다. 왼쪽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장비가 닿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맨손이 남았다. 바위가 손바닥에 닿았을 때 차가웠다. 6월인데 차가웠다. 해가 한 번도 닿지 않은 북쪽 면이었다.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밀고, 무릎으로 버텼다.

중간쯤에서 멈췄다. 숨이 찼던 게 아니었다. 아래를 봤다. 봐서는 안 되는데 봤다. 발밑이 비어 있었다. 바람이 등을 밀었다. 볼이 바위에 닿았다. 차가웠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왼손이 먼저 갔다.

빨간 등산복이 가까워졌을 때,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입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여기 있다는 뜻이었다.

네 시간이 걸렸다. 세 사람을 내려보내고, 그는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초소에 돌아오니 라면이 불어 있었다. 면이 국물을 다 먹었다. 버리지 않고 먹었다.

장갑을 벗었다. 왼쪽 엄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또.

그는 이름이 보도되지 않았다. 뉴스에는 “구조대원이 맨손으로 절벽을 올랐다”는 한 줄이 나왔다. 사진 한 장. 뒷모습.

내일도 초소에 앉아 라면을 끓일 것이다. 면이 딱딱한 동안은 괜찮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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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울산바위 고립된 등산객 구하려 맨손으로 암벽 오른 구조대원 — 파이낸셜뉴스, 2026년 6월 16일

한 줄 요약: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암벽등반 사고로 고립된 3명을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절벽을 오른 산악구조대원의 이야기.


작가의 말

뉴스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맨손으로 절벽을 올랐다”는 한 줄과 뒷모습 사진 한 장. 그 사람이 올라가면서 무엇을 느꼈을지 — 두려움이라는 단어 대신, 바위의 차가움으로 쓰고 싶었다. 장갑 왼쪽이 먼저 닳는 사람. 그것이 그의 이름 대신 남는 것이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