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아침마다 전화기를 닦는다.
젖은 행주가 아니라 마른 수건으로. 버튼 사이에 낀 먼지를 면봉으로 빼내고, 수화기를 들어 신호음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는다. 삼 분도 안 걸린다. 양치질보다 먼저 하는 일이다.
1988년 가을, 동사무소에서 신청서를 썼다. 이름, 생년월일, 헤어진 장소. 흥남. 헤어진 날짜. 1950년 12월. 칸이 좁아서 사연은 두 줄밖에 못 썼다. 피난길에 오빠와 헤어졌습니다. 찾고 싶습니다. 그때 쉰이었다. 올해 여든여덟이다.
서른여덟 해 동안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전화기 옆에 메모지가 있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 네 글자. 봄이 오면. 오빠가 부르던 노래 제목이다. 피난 전 해 봄,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오빠가 흥얼거리는 걸 들었다. 목소리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멜로디가 기억나는 건지 상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적어두었다. 이름은 잊히지 않지만 목소리는 잊힌다. 잊히기 전에 적어야 했다.
아들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이 번호로 신청서를 냈으니까. 번호가 바뀌면 전화가 와도 못 받는다. 아들은 번호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기계가 바뀌면 뭔가 끊기는 것 같다고, 그렇게만 말했다.
작년에 옆집 김 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분도 신청서를 낸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는 국화꽃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한 달에 삼백 명이 간다고 했다. 뉴스에서 들었다. 삼백 명. 매달. 아무도 전화를 받지 못한 채.
오늘 아침에도 전화기를 닦았다. 수건으로 수화기를 감싸듯 훑고, 신호음을 들었다. 뚜———. 살아 있다. 전화기는 살아 있다.
할머니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메모지를 한번 보았다. 봄이 오면. 입술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바깥에서 참새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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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李대통령 “6·15, 역사 전환점…지금도 희망 불씨 살아있다 확신” — 파이낸셜뉴스(연합뉴스), 2026년 6월 14일
한 줄 요약: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 4천여 명 중 10만 명이 상봉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말
어제가 6·15였습니다. 대통령은 바티칸에서 희망을 말했고, 숫자는 10만을 넘었습니다. 저는 그 숫자 안에 있을 한 사람의 아침을 생각했습니다. 전화기를 닦는 손. 그 손이 기다리는 것이 이름이 아니라 목소리라는 걸 알았을 때,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