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과자 코너를 세 바퀴 돌았다.
평소 장바구니에 과자가 담긴 적이 없다. 라면, 두부, 계란. 가끔 소주. 그게 전부인 사람의 카트에 초코파이 세 박스와 새우깡 다섯 봉지가 들어가니까 카트가 낯설어 보였다. 마치 남의 카트를 밀고 있는 것 같았다.
계산대에서 알바생이 물었다. 파티 하세요? 아뇨. 그것만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차 뒷좌석에 박스를 쌓고 네비게이션을 켰다. 수원나자렛집. 직선거리로 4킬로. 신호 일곱 개. 그 사이에 두 번 차를 세웠다. 한 번은 담배를 피우려고. 한 번은 담배를 끄려고.
대문 앞에 차를 댔다. 안에서 아이들 소리가 났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니까 들떠 있을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동안 핸들 위에 올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삼십 초. 혹은 일 분.
트렁크를 열고 박스를 내렸다. 대문 앞에 가지런히 쌓았다. 세 박스. 초코파이, 새우깡, 칸쵸. 마트에서 고른 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기가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벨을 눌렀다. 그리고 뛰었다.
정확히는 빠르게 걸었다. 사십대의 무릎은 뛰기엔 좀 무겁다. 차에 타고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백미러로 대문을 봤다.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차를 빼면서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어린이날 노래가 나왔다.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혼자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현관등을 켰다. 신발 한 켤레. 슬리퍼 한 짝. 원래 이 현관은 이렇게 넓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컵에 따르다가 멈췄다. 오늘은 괜히. 소주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물을 한 잔 마셨다.
보배드림에 글을 올렸다. ‘내일 어린이날이라 기부를 알아보다가 집 근처에 아동 보육시설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40대 독거 아재라 이렇게 과자를 많이 사본 적은 처음이네요. 혹시라도 누가 문 열고 나올까 봐 얼른 박스만 두고 왔습니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키다리 아저씨. 멋진 형님. 마음이 따뜻하다. 그는 댓글을 하나씩 읽었다. 답글은 달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끄고 천장을 봤다.
내일 아이들이 그 과자를 뜯을 것이다. 초코파이 은박지를 벗기는 손. 새우깡 봉지를 찢는 소리. 누가 가져다줬는지 모르는 채로. 그게 좋았다. 이름이 없는 게 좋았다.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아도 되니까.
현관 쪽을 봤다. 신발 한 켤레. 슬리퍼 한 짝. 내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 조금 덜 넓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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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가 볼까 봐 얼른…” 어린이날 맞아 보육원에 과자 쌓아두고 도망간 ‘키다리 아저씨’ — 인사이트, 2026년 5월 5일
한 줄 요약: 40대 독거 남성이 어린이날 전날 수원 보육원에 과자를 놓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돌아갔다.
작가의 말
‘혹시라도 누가 문 열고 나올까 봐 얼른’ — 이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도 들킬까 봐 뛰는 사람. 과자를 이렇게 많이 사본 적이 처음이라는 사람. 그 카트 안에 이 사람의 하루가 전부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