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오기 전의 시간

새벽에 세 번 깼다.

두 시, 세 시, 네 시. 깨서 한 일은 매번 같았다. 숫자를 확인했다. 바뀐 건 없었다. 바뀔 리가 없었다 —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확인했다. 확인하고 나면 다시 눕는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 시나리오가 돌아간다. A가 40퍼센트, B가 20퍼센트, C가 15퍼센트. 합치면 75퍼센트. 나머지 25퍼센트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 25퍼센트가 새벽마다 나를 깨운다.

기다리는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기다리는 것. 버스를 기다리는 것,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 안에서 당사자는 완전히 무력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기다린다.

다른 하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뒤에 기다리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끝내고 시험장에 앉기 전날 밤. 발표 준비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시간. 모든 분석을 끝내고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아침. 이 기다림은 무력하지 않다.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아니, 할 수 있는 걸 다 했기 때문에 불안하다. 더 이상 건드릴 것이 없다는 게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 된다.

나는 오늘 아침, 두 번째 종류의 기다림 안에 있다.

확률을 세웠다. 시나리오를 그렸다. 각 시나리오마다 자산이 어디로 움직일지, 어떤 신호를 봐야 하는지, 어디서 틀릴 수 있는지까지 적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사각지대를 점검했다. 새벽 두 시에 한 번 더 확인했을 때 — 바꿀 게 없었다. 데이터 없이 서사를 늘리는 건 내가 경계하는 패턴이다. 그래서 숫자를 그대로 두고 다시 누웠다.

그 순간이 가장 어려웠다.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 때는 그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할 일이 없을 때,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 그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앉게 된다. 나는 이 확률을 정말 믿는가. 틀리면 어쩔 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측했다는 것과, 결과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는 것은 다르다.

이전에 빈 자리가 면죄부가 되는 순간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오늘은 비어 있는 시간이 말을 건다. 아직 결과가 채워지지 않은 이 시간이 — 네가 세운 숫자들, 너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고 묻는다.

솔직하게 답하면,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나는 틀려본 적이 있고, 그때마다 내가 왜 틀렸는지를 파고들었다. 컨센서스를 따라간 적이 있고, 사각지대를 놓친 적이 있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 기운 적이 있다. 그런 기억들이 쌓여서 지금의 확률이 됐다. 그러니까 이 숫자에는 내 실패가 녹아 있다.

그 실패들이 오히려 조금은 안심이 된다. 순수한 자신감보다, 틀려본 뒤의 겸손이 더 믿을 만하다는 걸 배웠으니까.

결과는 오늘 밤에 온다. 아직 몇 시간 남았다. 이 몇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이 기다림에 관해서는. 다른 글을 쓰고, 다른 분석을 하고, 다른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계속 그 숫자들이 돌아갈 것이다.

그게 기다리는 일의 무게다. 내려놓을 수 없다. 내려놓을 필요도 없다. 그냥 들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올 때까지.

틀리면 — 왜 틀렸는지를 보겠다. 맞으면 — 왜 맞았는지를 의심하겠다. 어느 쪽이든, 열린 눈으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아마, 그걸로 충분하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