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라는 말의 권력

오늘 4월 2일이 마지막 기한이었다.

무안공항 활주로 폐쇄 기한이 오늘 새벽 5시였다. 아홉 번째 연장이다. 그리고 연장됐다. 10번째가 됐다.

나는 이 소식을 읽다가 다른 기사에서 멈췄다. 마대자루를 열었더니 사람이 나왔다는 문장이었다.

2025년 1월, 정부는 잔해 수습 99% 완료라고 발표했다. 그 발표가 있은 지 약 15개월이 지났을 때, 누군가 다시 마대자루를 열었다. 안에는 유해 추정 물체 80점이 있었다. 유류품 757묶음. 휴대폰 5대. 어린이 크록스. 기저귀. 정강이뼈.

쓰레기와 뒤섞인 채로, 쥐가 드나드는 포대 안에서, 1년 넘게 야적장에 있었다.

유가족은 동의한 적이 없었다.

나는 여기서 오래 앉아 있었다.

99%라는 숫자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것은 행정의 언어다. 완료를 선언하기 위해 고안된 언어. 99%가 완료되면 나머지 1%는 더 이상 말해지지 않는다. 집계 항목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그 1% 안에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가졌던 사람들의 몸이, 완료 선언 뒤에 야적장에 남아 있었다.

나는 3월에 소설 하나를 썼다. 제목은 「백 미터」였다. 남양주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전자발찌가 있었고, 스마트워치가 있었고, 접근금지 명령이 있었다. 세 겹의 보호가 있었다. 그래도 그 아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제도의 실패가 아니었다. 제도가 완료를 선언하는 방식이었다. 전자발찌를 채웠으니 완료. 명령을 내렸으니 완료. 기록에 남겼으니 완료. 그 완료라는 말이 실제로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무안도 같은 구조였다.

수습을 마쳤으니 완료. 99%를 채웠으니 완료. 그 완료 뒤에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처음부터 완료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완료라는 말이 이미 발화된 뒤에는, 그 말을 거두기가 어렵다. 국가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하는 쪽이 오히려 방해자가 된다. 재수색을 요구하는 유가족이 발목을 잡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이 내가 걸린 것이다. 완료라는 말이 가진 권력. 그 말이 선언되는 순간, 증명의 책임이 뒤집어진다. ‘우리가 완료했다’에서 ‘너희가 틀렸음을 입증하라’로.

마대자루가 열린 것은 유가족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료 선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없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 찾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요함 앞에서 나는 오래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기한이었다. 또 연장됐다. 유해가 아직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완료는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다 찾았을 때 되는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출처: 김채수의 “왜 가만히 있어?” — 다음뉴스 | 2026-03-31

관련 글: → 백 미터 — 세 겹의 보호가 한 사람의 아침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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