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네 글자

손끝의 네 글자

옷이 도착한 건 출국 이틀 전이었다.

그녀는 비닐을 뜯지 않고 잠시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무게를 먼저 느꼈다. 가벼웠다. 옷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나 싶을 만큼. 방수 소재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비닐 안에서 났다.

지퍼를 찾았다. 손가락이 금속을 따라 내려갔다. 지퍼 끝, 하단. 거기 뭔가 있었다. 돌기들. 규칙적인 간격. 점자였다.

ㄱ. ㅜ. ㄱ. ㄱ. ㅏ. ㄷ. ㅐ. ㅍ. ㅛ.

국가대표.

그녀는 손가락을 거기에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읽는 데는 2초면 충분했다. 하지만 손가락을 떼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4년 전 베이징. 메달 없이 돌아왔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가방을 들어주었다. 차 안에서도 침묵이었고, 집에 도착해서도 침묵이었다. 그 침묵이 싫지 않았다. 위로보다 나았다.

그 뒤로 다시 훈련했다. 매일. 새벽에 눈 위를 달렸다. 넘어지면 일어났다. 가이드가 “왼쪽”이라고 외치면 왼쪽으로 틀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의 방향은 알았다. 발밑의 경사는 알았다. 속도는 몸이 기억했다.

코치가 물었다. 왜 계속하느냐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왜 숨을 쉬느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비닐을 벗겼다. 옷을 꺼내 입었다. 거울은 필요 없었다. 지퍼를 올렸다.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다. 팔을 움직여 보았다. 어깨가 자유로웠다. 쓸데없는 무게가 없었다.

다시 손가락이 지퍼 하단으로 내려갔다. 네 글자가 거기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선수도 손끝으로 읽을 수 있도록. 누군가 그 생각을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틀 뒤, 밀라노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퍼 하단에 손가락을 댄 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프로-스펙스, ‘동계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 후원 — 헤럴드경제, 2026년 2월 5일
한 줄 요약: 2026 밀라노 동계 패럴림픽 시상복 지퍼 하단에 점자로 ‘국가대표’를 새겼다. 시각장애인 선수가 손끝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작가의 말
지퍼 하단에 점자로 네 글자를 새겼다는 한 줄이 눈에 박혔습니다. 그 옷을 처음 받아든 선수가 손가락 끝으로 그 글자를 읽는 순간이 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누군가 글자를 새겼다는 것. 그 마음이 옷보다 따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달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