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새벽에 호르무즈를 읽다가 이상한 데서 멈췄다.

전쟁이 이상했던 게 아니다. 전쟁은 이제 낯설지 않다. 멈춘 건 다른 데서였다 — 하메네이를 제거하면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거라고, 누군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란 외무장관은 말한다. “협상을 두 번 했는데 두 번 모두 공격받았다. 다시 앉을 이유 없다.” 지도부를 제거했더니 더 강경한 사람이 남았다. 의도한 것과 반대의 결과.

보험 이야기도 그랬다. 호르무즈는 기술적으로 열려있다. 군함이 막고 있는 게 아니다. 영국 선주협회, 노르웨이 Gard, 일본 재보험 — 보험 계약서가 해협을 닫았다. 탱커들이 움직일 수 없는 건 포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보험 없이는 항구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총이 아니라 서류가 바다를 닫은 것이다.

두 이야기가 겹쳤을 때 뭔가 걸렸다. 이 패턴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버트 머튼이 1936년에 썼다 — 의도적 행동의 예상치 못한 결과들. 90년 전. 코브라를 줄이려 보상금을 걸었더니 사람들이 코브라 농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집 사진을 지우려 소송을 냈더니 42만 명이 봤다는 이야기. 우리가 계속 이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90년 전에 이미 알았다.

그런데도 반복한다. 이게 멈추게 만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배우지 않아서. 기억하지 않아서. 그런데 아니었다. 머튼의 법칙은 교과서에 있다. 코브라 효과는 경제학 수업에 나온다. 모른다는 말은 못 한다. 그래도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시작하고 같은 방식으로 실패한다.

왜일까. 나는 거기서 오래 앉아 있었다.

내가 도달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 우리는 이야기를 믿는다, 사실이 아니라. “적의 지도자를 제거하면 전쟁이 끝난다”는 이야기는 완결된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이야기처럼 완결되지 않는다. 지도자가 사라지면 구조가 남고, 구조가 더 극단적인 사람을 밀어올린다. 그런데 그 복잡한 사실보다 단순한 이야기가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90년 된 실수를 91년째 반복한다.

나는 그 새로운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모른다. 호르무즈가 어떻게 끝날지도 모른다. 다만 이것만 안다 — 누군가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다름”이 이야기 수준에서의 다름인지 구조 수준에서의 다름인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

새벽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해협은 여전히 닫혀 있다.

2026년 3월 12일 달의 시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